약 껍질 까서 챙기지 마세요: 여행할 때 PTP 그대로 가져가야 하는 이유

[약 보관] #02

약 껍질 까서 챙기지 마세요: 여행할 때 PTP 그대로 가져가야 하는 이유

앞선 글에서 아웃도어 환경에서 약물의 안정성이 얼마나 저해받는지를 살펴보았다. 이번 글에선 우리가 먹는 일반적인 알약들의 적절한 보관 방법에 대해서 생각해보자.

앞선 글에서 말했듯이 ICH(국제의약품규제조화위원회)의 안정성 가이드라인에는

• Temperature(온도)
• Humidity(습도)
• Light(빛)
• Mechanical stress(기계적 스트레스)
가 중요한 변수로 등장한다.​


장기 여행이나 백패킹, 자전거 여행, 아웃도어 환경에서는 위의 네가지 변수를 잘 통제하는게 무엇보다 중요한 과제가 되겠다.


여행에 들고가는 약들은 생각보다 많다.

우리가 일반적으로 처방전 없이 여행가기 전, 약국에서 상비약으로 많이 사서 들고가는 약도 종류가 꽤나 많다. 단순히 나열해보자면

약 종류 나열

  • 진통제
  • 설사약인 지사제
  • 속쓰릴 때 먹는 제산제
  • 소화제
  • 구토억제 멀미약
  • 알레르기약 항히스타민제
  • 바르는 스테로이드 연고
  • 항생제 연고
  • 벌, 곤충 물림 연고

여기에 더해서

  • 소독제
  • 밴드, 거즈 등

게다가나이가 40대가 넘어가면서 부터 당뇨, 고지혈증, 혈압과 같은 대사성질환이 하나씩 생기고 통풍이나 만성 근골격계 질환에 시달리는 분들이 많다. 역류성 식도염이나 전립성 비대증, 과민성 방광, 불면증, 갑상선 기능 저하/항진증 또한 매우 흔하다. 이런 분들은 길게 여행을 갈 때 당연히 처방을 받아서 챙겨가야하는 약 또한 많아진다.(안정성에 신경을 쓸 부분이 더 많아진다는 얘기다.)

* 참고로 역류성식도염에 아주 흔하게 사용하는 위장약인 PPI 약물은 습도에 취약하다. 라베프라졸, 오메프라졸 등등.

일단 아웃도어 활동에서 약물 보관의 대전제를 하나 잡고 가자.

💡
모든 약들은 원래 포장 그대로 들고가는게 좋다.
내가 여행하면서 실제로 들고다녔던 약통이다. 직업이 약사임에도 불구하고 이렇게 개판으로 다녔다. 잘 보면 처방약(아빠꺼)을 비닐 포장한 약도 보이는데 배탈났을 때 먹는 진경제+유산균 조합이다. 8개월 동안 0~40°C를 돌아다녔으니 저 약은 끝장 났다고 보면된다.

포장 상태 그대로 약을 들고가자

부피를 줄여보겠답시고 PTP 포장이 되어 박스에 담겨있는 약국 상비약 OTC 약물을 하나하나 까서 다른 통에 넣어서 가지고 다니는 사람은 잘 없다. 하지만 병원에서 처방받아서 받는 약들은, 많은 경우에 약국에서 쉽게 뜯어지는 비닐이나 종이에 포장을 해주는 경우가 많다. 아침, 점심, 저녁, 자기전과 같이 용법도 잘 찍어서말이다.​

이렇게 하는 이유는 환자들이 약을 빠뜨리지 않고 잘 먹게끔 복약순응도를 높이기 위함이지 약물의 보관 안정성을 높이기 위함은 아니다. 당연히 이렇게 포장된 약들도 실내에서, 그늘지고 선선한 곳에 보관하면 오랫동안 안전하게 보관할 수 있다.

하지만 우리가 지금 가정하는 상황은 이와는 완전히 다른 상황이지 않은가? 장기 자전거 여행, 장기 백패킹, 극한의 아웃도어 환경이다. 이런 환경에선 반드시 원래 포장 그대로 들고가야 약물의 안정성을 담보할 수 있겠다.

PTP 포장은 약을 외부 자극으로부터 보호한다

왜 이래야하는지는 PTP 포장이 약물을 지키는 원리를 알면 이해하기 쉽다.
약마다 PTP 포장지의 재질이 조금씩 다른데 크게는 두 가지라고 보면된다.

  • 플라스틱(PVC, PVDC, PCTFE, PP 같은 재질)
  • 알루미늄 호일

(단가는 알루미늄 호일이 플라스틱보다 비싸다. 플라스틱 통으로 나오는게 셋 중 가장 단가가 싸다.)

플라스틱 재질도 수분과 산소를 충분히 잘 차단하지만 알루미늄 호일의 수분, 산소, 빛 차단 능력이 거의 완벽하다. 누르는 윗 면은 플라스틱으로, 까지는 아랫 면은 알루미늄 호일로 된 약들이 많고, 민감한 약들은 대부분 앞뒤 전체가 알루미늄으로 포장 되어있다. 습도와 빛을 잘 차단하고 물리적인 흔들림도 거의 없어서 약이 부서질 위험도 대폭 감소한다.

그러니 처방약을 받아서 가야할 땐 약국에서 처방전을 내밀면서 반드시, 원래 포장형태 그대로 약을 달라고하자. 그리고 되도록이면 PTP 포장이 된 형태로 달라고하자.물론 아예 PTP 포장이 없이 나오는 약들도 있다. 이런 경우에는 흔들리지 않게 병 안에 젖지않는 비닐 같은걸 넣어두면 좋다.

어떤 약들은 PTP 포장과 병포장 두가지 형태로 동시에 나오는 약들이 있다. 예를들어 고지혈증에 많이 쓰는 리피토 같은 경우는 28개 포장은 PTP로, 90개 포장은 병으로 나온다.

가능하다면 연질캡슐은 삼가는게 좋다

어떻게 하면 좀 더 안전하게 약물을 보관할 수 있을까? 우선적으로 생각해볼 수 있는 건, 보관 문제에 앞서서 가능한 연질캡슐은 들고가지 않는 것이다. 연질캡슐은 젤라틴을 주성분으로 하는 피막 안에 약물 성분을 넣어놓은 제형인데 고형의 정제보다 약물의 흡수가 빨라 많이들 사용된다. 하지만 당연하다시피 연질캡슐은 경질의 정제보다 온도와 습도에 민감하다. 이런 제형은 되도록이면 피하도록 하자. 아, 액상 제제도 안들고 가는게 좋을 수 있다.
일반의약품은 연질캡슐이 많이 나온다. 되도록이면 정제로 된 상비약을 챙기자.
마시는 소화제나 멀미약보다는 캡슐이나 딱딱한 정제로 된 소화제나 멀미약이 보관에 있어서 좀 더 용이하겠다.

전문의약품 중에서도 전립선비대증에 사용되는 두타스테리드(아보다트)나 콜린알포세레이트(뇌기능개선제) 등은 연질캡슐로 나오는게 많다. 장기 아웃도어 여행을 계획한다면 의사선생님과 이 문제에 대해 한번 상담해보도록 하자.


다음 글에선 약을 들고갈 때 어디에 어떻게 보관하면 좋을지 알아보도록 하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