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행 가방 속 약은 얼마나 버틸 수 있을까

[약 보관] #01

여행 가방 속 약은 얼마나 버틸 수 있을까

Abstract: Outdoor Environments and Medication Storage – Why Careful Management Matters

Unlike stable indoor settings, outdoor activities often expose medications to unexpected temperature shifts and humidity. During long-term expeditions like bicycle tours or backpacking, medicine may face harsher conditions than the standard storage guidelines intended by manufacturers. These environmental factors can gradually diminish the efficacy of a drug or lead to physical deformation.

By applying the Arrhenius equation and the Q10 concept, this note explores how rising temperatures can theoretically accelerate the rate of drug decomposition. High humidity may affect the stability of the β-lactam ring in certain antibiotics, while extreme cold can alter the properties of biological agents like insulin. Furthermore, constant vibration during travel can wear down pill coatings, making them more sensitive to the elements. Understanding these four variables—Temperature, Humidity, Light, and Physical Stress—is a vital part of a traveler’s wisdom, ensuring that your medication performs its role effectively even in challenging environments.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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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에 비해 오늘날 지구인 대다수는 섭씨 22도 정도 되는 온화한 기후 속에 살고 있다. 날씨를 경험하는 시간은 대략 2분 정도에 불과하다. (중략) 미국인은 하루 중 93퍼센트 이상의 시간을 냉난방 시스템이 있는 실내에서 지낸다.
마이클 이스터, 『편안함의 습격』 중에서

야외와 실내의 약 보관 환경은 다르다.

야외 환경은 실내환경과 많이 다르다. 실내환경이라함은 자동차, 직장, 집, 지하철, 가끔가는 음식점이나 카페 정도가 될텐데 이 공간에선 20-25도씨 정도를 크게 벗어나지 않는다.

하지만 아웃도어 활동을 할 때는 얘기가 달라진다. 장거리 자전거여행이나 백패킹 혹은 배낭여행을 갈 때는 야외에서 보내는 시간이 자연스레 많아진다. 극단적인 곳에는 -20도 이하 혹은 영상 40도 이상으로 넘어가는 경우도 흔하게 있다. 캠핑을 하는 경우에는 문제가 더 복잡해진다. 우리의 몸도 그렇지만 약 또한 자연스레 24시간 외부의 환경에 그대로 노출이된다.

이 경우는 약의 보관 문제가 꽤나 중요해진다.
우리가 일반적으로 복용하는 정제는 상온(15~25°C)나 실온(1 ~ 30°C)보관이 기준이다.

나의 자전거 여행 당시(8개월)

내가 자전거 여행할 때 이야기를 해보자. 동남아의 높은 습도와 온도에 자전거 가방에 24시간 약을 넣고 다니니 PTP 포장이 잘 되어있음에도 불구하고 연질캡슐은 다 녹아서 껍질에 들러붙어있다. 다른 약들도 마찬가지였을테다. 겉으로는 멀쩡해보여도 약들이 수개월간 추위와 더위, 건조한 날과 습한 날, 햇빛까지 견뎌야했기에 약의 효능과 안정성이 일반적인 기준에서 많이 벗어났을 가능성이 높다. 마치 이 조건은 제약회사에서 의약품 안정성 시험을 할 때 '가속시험'이나 '가혹시험'과 비견될 만하다.

약은 적절한 온도, 습도에서 보관해야한다. 포장지에 적혀있는 약의 유통기한도 당연히 '적절한 보관 상태'에서 보관 되었을 경우를 기준으로 삼지 않겠는가. 40도가 넘는 온도에서 상대습도 80%에 햇빛에 노출되어있고 게다가 자전거 여행이나 백패킹과 같이 약이 자꾸 흔들리는 환경에 노출되어있는 약은 그 안정성이 심각하게 위협받는 건 당연지사다.

온도가 약 보관 안정성에 미치는 이론적 영향

여기서 한번 화학 시간에 배운 아레니우스 식을 떠올려 생각해보자.

이 식에 따르면 온도가 상승함에 따라 약물의 분해 속도는 지수함수 형태로 상승한다. 냉장 보관한 우유는 며칠을 버티지만, 여름날 차 안에 둔 우유는 몇 시간 만에 상해버린다.

물리약학 시간에 배운 Q10이라는 개념이 있는데 온도가 10도 상승할 때 반응속도(분해속도)가 얼마나 빨라지는지를 나타내는 값이다. 일반적인 약들은 2 근방의 값을 갖는다고 한다. 다시 말해 이상적인 보관 온도가 15도라면, 자전거 가방 속의 약의 온도가 45도까지 올라간다고 해보자. 그럼 분해속도는 8배 빨라진다.(이론적으로만 그렇단거다.) 실제 상황에선 다른 변수가 무지하게 많겠지만 어쨌든 아주 단순화된 계산으로는 유통기한이 그만큼 짧아진다는 얘기다.

너무 높은 온도도 문제지만 낮은 온도도 문제다. 안약이나 액상 약물은 얼면 물리적, 화학적 구조가 파괴되어 효능이나 안정성이 저해될 수 있다. 인슐린 주사제 같은 경우는 얼어버리면 단백질 구조가 변성되어 사용이 거의 불가능해진다.

이런 인슐린 펜은 얼면 치명적이다

습도도 중요하다.

온도 뿐만 아니라 습도도 중요한 요소이다. 습기는 약물의 화학 구조에 직접적으로 관여하여 약물을 분해하는 가수분해 반응을 가속화한다. 그 결과 약물의 유효 성분이 화학적으로 변성되어 약효가 급격히 떨어지거나 사라질 수 있다.

코팅이나 외형의 손상을 입어서 약물의 붕해시간이나 용출률에도 변화를 줄 수 있다. 안정성에도 타격을 입히는 것은 물론이다.

예를 하나 들어보자. 치과 치료를 받고나서 흔하게 처방되는 항생제 중에 아목시실린이란 페니실린계열 항생제가 있다. 이 약은 화학 구조적으로 불안정한 사각형의 β-락탐고리를 가지고 있어서 고온 고습한 환경에서 약효의 핵심인 고리가 깨어질 수 있다. 이 β-락탐 고리가 열리게 되면 항균 활성이 소실된다. 비슷하게 세파계열의 항생제도 똑같이 이 사각형의 고리를 가지고 있는데 이 약은 내과나 정형외과에서 아주 흔하게 쓰는 약이다. 특히 호흡기 감염에 많이 사용해서 감기에 걸렸을 때 처방이 잘 나온다.
아웃도어 환경에선 이 약들의 안정성도 신경써줘야한다.

덥고 습한 날만 습도가 문제가 되는게 아니다. 추운 날 차가운 야외에 약이 보관되어 있다가 따뜻한 실내로 들어올 때, 혹은 체온에 의해서 급하게 덥혀질 때 약 표면에 수분이 응결될 수 있다. 차가운 냉장고에 있던 캔이 밖에 나왔을 때 표면에 수분이 맺히는 것과 같은 맥락이다.

베트남 남부. 이 날 너무 더워서 온몸에 계속 물을 끼얹으면서 잤다.
자전거 여행을 하면 다양한 환경에서 잘 일이 생긴다.

햇빛도 문제가 된다

햇빛 또한 문제가 될 수 있다. 협심증약인 니트로글리세린이나 많이들 복용하는 갑상선약 씬지로이드 같은 경우는 차광을 제대로 하지 않으면 햇빛에 의해서 광분해가 일어난다. 약의 효능에 심각하게 문제를 주는 요인이다.

앞에서 언급은 하지 않았지만 진동도 문제가 될 수 있겠다. 장기간 자전거를 타거나 오래 걸으면 약이 계속 흔들리면서 정제가 파손되거나 코팅이 벗겨지는 경우가 생긴다. 표면적이 증가하면 습기에 더 취약해지고 이는 자연스레 약의 불안정성을 야기하게 된다. 가루약을 떠올려보자. 가루약은 습기에 아주 취약해서 보관기한이 매우 짧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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ICH(국제의약품규제조화위원회)의 안정성 가이드라인에서는 명확하게
• Temperature(온도)
• Humidity(습도)
• Light(빛)
• Mechanical stress(기계적 스트레스)
를 중요한 변수로 취급한다.

여기서 두가지 질문이 따라온다.

  1. 아웃도어 활동시엔 어떻게 약을 보관해야 할까?
  2. 아웃도어 환경에서 비교적 안전한 약은 어떤 약일까?

​사실 최선의 방법은 당연히 집 안에 가만히 있는 것이다. 하지만 세상에는 안전하지 않다는 것을 알면서도 탐험을 멈추지 못하는 사람들이 있다. 죽을 수 있다는 걸 알면서도 파도를 넘고 산을 올라가는 사람이 있다는 얘기다. 이들을 위해선 차선책이라도 생각해봐야하지 않을까?

다음 글에선 내가 찾은 나름의 방법을 공유해보고자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