웰치스 체리맛을 좋아하는 방콕의 신

[동남아 자전거 여행] #05 태국 2024.12.15 방콕의 한인교회와 짜뚜짝 시장을 돌아본 하루

웰치스 체리맛을 좋아하는 방콕의 신

2024.12.15

오늘은 아침에 수쿰빗 한인교회에 갔다. 오전 11시에 예배 시작인데 딱히 할 것도 없고 한국인들이랑 얘기도 하면 좋겠다 싶어서 10시 쯤 교회에 갔다. 예배가 끝나고 짜뚜짝 주말시장에 가려고 작은 가방에 물과 보조배터리도 챙겨갔다. 여기 태국에서는 물을 공짜로 얻어먹을 수 있는 곳이 없다. 식당에 가서 물을 달라하면 10바트 짜리 생수를 건네준다. 뉴질랜드에서는 Public Water Fountain이 곳곳에 널려있고 강물을 마셔도 안전했었는데 말이다.

한인교회에서는 대체로 사람들이 친절하게 잘 대해주긴 하지만 환영받는 느낌을 받지는 못한다. 지난번 뉴질랜드 크라이스트처치 지역에 큰 규모의 한인 교회를 갔을 때도 이런 느낌을 받았었는데 오늘 온 작은 교회도 별 다를게 없다. 워낙 유명한 관광지이다 보니, 나 같은 사람이 발에 치일 정도로 많고 타국에서 한인 교회라는 커뮤니티를 이용하려는 사람이 많다보니 이렇게 된 것일까. 아니면 내가 부담스러워할까봐 일부러 배려하는 것일 수도 있겠다.


짜투짝 주말 시장에는 지하철을 타고 갔다. 지하철 요금이 한국보다 비싸고 사람은 서울 지하철 만큼 바글거린다. 여기서도 역시나 한국 아주머니는 가방으로 일행의 자리를 맡아놓고는 빨리 오라고 소리친다. 내가 앉을 수 있는 자리였는데 말이다.

짜뚜짝 시장은 우리나라 광장시장 느낌이 났다. 거기보다 길이 조금 좁고 사람이 더 붐비는 느낌이다. 태국 국기를 사려고 한참을 헤맸다. 길에서 음식도 먹고 음료수도 마시면서 겨우 국기를 발견할 수 있었다. 작은 국기와 그것을 꽂는 막대기 하나에 150바트(6300원)을 달라고 한다. 태국의 최저임금으로 계산한 하루 일당이 350바트 정도이니까 관광지 물가가 얼마나 비싼지 알 수 있다.


다시 지하철을 타고 숙소로 와서 조금 쉬다가 근처에서 캠핑 가스를 하나 사고는 개퇴치스프레이가 있나 싶어 한참을 돌아다녔다. 곳곳에 Cannabis Club이라는 간판이 보인다. 내가 알고 있는 Cannabis는 대마인데? 궁금해서 검색을 해보니 태국은 몇년 전 대마가 합법화 되었다고 한다. 그래서 우리 엄마가 내가 태국에 간다니까 대마얘기를 그렇게나 하면서 걱정을 했었구나. 우리 엄마는 한국에서 담배가 불법이라서 내가 담배를 피우지 않는다고 생각하나보다.

여긴 대마도 합법, 동성결혼도 합법이다. 군부정권이 태국의 권력을 잡고 있긴하지만 각종 규제가 느슨한 모양이다. 규제와 자유 사이에 대한 논쟁은 인류사에 늘 있어왔는데 여기 방콕은 자유의 편에 선 커다란 실험장같다.

오는 길에 약국에 들러 약도 샀다. 잠을 잘 못잘 경우를 대비해서 수면유도제를 하나 구입하려고 했는데 이 나라는 우리나라에서 반드시 처방전이 있어야 되는 약들을 그냥 판다. 오늘 받은 수면제는 항우울제겸 수면제 trazodone인데 대부분의 나라에서는 당연히 처방전이 있어야 구매 가능하다.

숙소로 걸어들어오는데 숙소 입구에 있는 조각상 앞에서 호스텔 주인들이 차례 차례 향을 피우며 기도를 하고 있다. 며칠간 이 숙소에 머무르면서 이 조각상이 있는지 조차 몰랐다. 궁금해서 이에 대해 물어보니, 이 조각상은 자신들을 지켜주는 수호신이고 붉은 색의 음료를 좋아한다고 했다. 그래서인지 내가 제일 좋아하는 웰치스 체리맛 음료수가 제단에 잔뜩 올려져있다.

한국 개신교는 이런 식의 우상숭배에 대해서 지나치게 강경하게 대처했었다. 우상을 물리친답시고 한국은 물론 먼 타국에까지 가서 땅밟기 운동이라는 요상한 운동을 한 적이 있다. 하지만 나를 포함한 많은 기독교인들은 형상이 있는 직접적인 우상을 섬기진 않더라도 돈, 자아, 권력 그리고 교회 건축물 같은 간접적인 다른 우상을 섬기고 있다. 어쩌면 이 조각상에게 기도하는 이 사람들이 나을지도 모른다. 이들의 마음에는 내 힘으로 할 수 없다는 겸손함과 경건함이 깃들어있지 않은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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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교가 맞닥뜨려 싸워야 할 것은 다른 종교가 아니라 경건함이 깃들 수 없는, 그것이 아예 무엇인지 모르는 마음이어야 할 것이다.
- 밤이 선생이다, 황현산

호스텔 주방으로 물을 뜨러 가니 bowie라는 호스텔 주인 중 한명이 음식을 다 먹고 설거지를 하고 있다. 그러면서 나에게 이 음식을 한번 먹어보라고 권한다. 면은 한국 면이지만 국물은 향이 엄청 강한 어두운 색의 국물이다. 별로 맛이 없었지만 싫은 내색을 하지 못하고 잘 먹었다.

이 친구는 나랑 동갑인데, 뭔가를 배우러 한국 부산에 왔는데 어떤 bad story가 생겨서 2개월만에 한국을 떠났다고 한다. 한국에서 한국인들은 태국 사람들이랑 이야기 하는 것을 별로 안좋아하는 것을 느꼈다고 한다. 싱글맘이고 벌써 딸이 12살이란다. 나중에 알게 된 사실인데 태국에서는 이런 케이스가 흔하다.

내일은 드디어 대망의 방콕을 벗어나는 첫 라이딩을 하는 날이다. 체력을 안배하기 위해서 일찍 잠자리에 들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