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토바이의 나라 베트남: 마침내 호치민시 도착!

[동남아 자전거 여행] #41 베트남 2025.02.16 수 많은 오토바이 군단을 뚫고 마침내 도착한 호치민시. 그 후에 방문한 전쟁박물관 이야기.

오토바이의 나라 베트남: 마침내 호치민시 도착!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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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5.02.16

호치민은 인구 약 900만명, 과거 사이공이라는 이름으로 불렸으나 베트남 전쟁이후로 호치민이라는 이름으로 변경. 호치민은 현대 베트남의 독립 영웅이자 혁명 지도자의 이름이다. 과거의 캄보디아 영토였는데 베트남이 차지했다고 한다.

베트남의 악명높은 오토바이는 유명하다. 베트남은 2024년 기준으로 7,500만대 이상의 오토바이가 등록되어있다고 하는데 베트남 인구가 1억명인걸 감안하면 이건 미친 수준이다. 태국과 같은 근처 동남아 국가에 비해서도 압도적인 비율이다.

오토바이가 너무 많아서 자전거를 타기 힘들까봐 걱정을 꽤 했지만 기우였다는게 곧 밝혀졌다. 방콕과 비교했을 때, 차에 비해 오토바이가 교통 흐름에서 차지하는 비율이 매우 높아서 교통의 흐름이 아주 원활하다. 그리고 오토바이용 차선을 따로 만들어놓아서 차도로 가는거보다 더 안전하기까지 하다. 그래서 자전거 타는 것도 방콕보다 훨씬 수월했다. 기후변화 때문에 베트남에서 앞으로 오토바이를 퇴출한다는데, 과연 쉽게 할 수 있을지 의문이다. 이를 위해선 베트남의 대도시 도로 전체를 뜯어고쳐야한다. 아마 전기오토바이를 더 많이 도입하는 방향으로 가지 않을까?

삶은 타인과의 상호작용으로 일어나고 나는 내 삶과 목숨의 결정권자가 아니다. 수 많은 오토바이 속에서 주행하는 나에게 필요한 건 그저 ‘믿음’이다. 내 뒤의 수백, 수천대의 오토바이가 나를 잘 피해갈 거라는 믿음. 내 스스로도 당연히 최대한 갓길로, 안전하게 주행하겠지만 이것이 내 안전과 목숨에 차지하는 비율을 5%나 될려나. 내 목숨의 95%는 타인에게 달려있다. 그리고 그냥 오토바이의 몸을 맡기니 위험하다는 느낌도 없다.

베트남은 내가 이 때 까지 들른 나라 중 물가가 가장 싸다. 자전거 여행자로서 나에게 가장 와닿는 건, 음식과 숙소 물가이다. 거의 모든 경비를 이 두 가지에 사용하기 때문이다. 숙소는 보통 11,500원~19,000원 사이. 시골 숙소가 당연히 좀 더 저렴한데, 놀랍게도 호치민과 같은 수도의 숙소비용도 크게 다르지 않다. 도시 중심부에 꽤 괜찮은 컨디션의 숙소를 2만원 이하로 구할 수 있다. 이 점이 베트남에서 가장 만족스럽다.

이틀간 호치민에서 푹 쉬다 갈 예정이다.


여행이 끝나고 다시 찾은 베트남, 호치민 전쟁박물관에서.

우리나라 '맹호부대'와 '백마부대'의 마크가 보인다.
우리는 틀렸었다. 우리는 지독하게도 틀렸었다.
(We were wrong, we were terribly wrong).
- Robert McNamara (베트남 전쟁 당시 미국의 국방장관)

긴 여행이 나에게 남긴 가장 큰 선물은 바로 다른 나라 사람들을 더이상 NPC 처럼 대하지 않게되었다는 점이다. 단지 동남아의 나라들을 휴양지로 소비할 땐 베트남이든 태국이든 필리핀이든 라오스든 그 나라 사람들은 그저 나에게 '서비스를 제공하는 친절한 사람' 이라는 익명의 존재로 밖에 머무르지 않는다.

하지만 그 사람들과 나와 개인적인 연대가 생기면 그들은 나에게 의미가 있는 사람으로 변모하게 된다. 공중에 붕 뜬 추상적인 존재가 아니라 나와 같은 땅을 밟고 있는 구체적인 존재가 된다.

베트남의 땅을 달리고 베트남의 음식을 먹고 베트남 사람과 상호작용하고 있는 동안 나능 이 나라와 깊이 동화된다. 몸이 동화되면 감정도 따라 움직인다.

베트남에서 자전거를 타고 달릴 때, 베트남 전쟁 일화를 유튜브에서 들은 적 있다. 자전거를 약간 개조해서 엄청난 짐을 싣고 달렸다고 한다. 튜브가 터져도 고무 튜브를 구하지 못해 타이어 안에 짚단, 휴지, 넝마, 바나나 잎 등을 넣고 임시로 수리해서 썼다고 한다.

마침 내가 자전거를 타고 있는 중이어서, 그 처절함에 눈물이 났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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