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혹시 한국에서 온 그분?" 첩첩산중에서 만난 자전거 여행자

[뉴질랜드 자전거 여행] #08 2024.11.13 왕가누이(Whanganui) 가는 길에 만난 두 명의 영국인 자전거 여행자

"혹시 한국에서 온 그분?" 첩첩산중에서 만난 자전거 여행자

2024.11.13

현재 위치는 Raetihi, 바로 밑에 큰 도시인 Whanganui까지 가려면 거리상으로 100km와 1,100m가 넘는 고도를 넘어야 한다. 고도를 포함한다면 이 거리가 이때까지의 자전거여행 중 가장 힘든 일정이 될 거다. 거기다가 중간에 작은 마을이나 인가도 하나도 찾아볼 수 없는 첩첩산중, 말 그대로 정글처럼 보이는 곳이다.

그래서 어젯밤부터 고민이 엄청 많았다. 어제는 통가리로 산 하이킹을 다녀오느라 안 쓰는 근육을 많이 써서 몸이 많이 찌뿌둥하고 피곤하다. 두 가지 선택지가 있었는데 Whanganui로 가는 길 중간에 있는 무료 캠핑장(화장실 하나 달랑 있고 캠핑장이라고 한다.)에서 하루를 자고 가느냐, 아니면 무리해서라도 100km를 달리느냐. 어젯밤에는 결론을 내지 못하고 잠들었는데 아침이 되고 나서 컨디션이 그닥 좋지 않은 듯해 65km 정도 가면 있는 캠핑장에 묵기로 결정한다.

문제는 무엇이냐? 거기는 마실 물과 음식을 찾을 수 없으니(한참 내려가면 강물이 있는데 그걸 마시고 싶지는 않았다.) 이틀 치의 물과 식량을 챙겨가야 한다는 것. 평소 같으면 9시 전에 캠핑장에서 출발했을 텐데 65km는 금방 간다는 생각으로 10시까지 밍기적거리다가 4L의 물과 식량을 가방 가득 싣고 출발.

가는 길이 꽤나 무서웠다. 마치 우거진 밀림 한가운데 나있는 도로를 달리는 느낌. 아마 우리나라 강원도 쪽으로 라이딩하면 이런 느낌이지 않을까. 잘 가다가 문득 여기서 곰을 마주치면 어쩌지라는 걱정이 든다. 재빨리 Chat GPT에게 물어보니 뉴질랜드에는 대형 육식 포식자가 존재하지 않는단다. 가슴을 쓸어내리면서 하는 생각. 생태계는 어떻게 유지가 되지?

지금은 생태계 걱정을 할 때가 아니라 내 걱정을 할 때이다. 10시에 출발했는데 12시쯤부터 인터넷도 끊겨버린다.(이대로 오후 4시까지 인터넷이 안된다.) 혹여나 조난을 당하면 아이폰에 새로 추가된 기능인 위성 sos 문자메시지를 보내야겠다는 생각을 했다. 자전거 전용 가민네비게이션에 캠핑장 위치를 제대로 찍지 않아서 결국에 오프라인 내비게이션 어플인 MAPS.ME까지 동원해서 캠핑장 도착.

실제 눈으로 보니 더 처참했다. 너무 더러워서 사용할 수도 없을 정도의 화장실 하나. 그리고 도로 옆에 졸음쉼터 규모도 안되는 작은 잔디밭 공터 하나가 Free Camp site 란다. 여기서 자라면 자겠지만 첫째로는 무섭고 둘째로는 인터넷이 안된다. 오후 3시에 그곳에 도착했는데 다음날 아침까지 인터넷을 못한다는 생각을 하면 끔찍하다. 오지로 가는 자전거 여행자들은 이삼일 인터넷이 안 터지는 경우가 다반사라던데 나는 정말 구제불능의 현대인인가 보다.

인터넷 안되면 못잔다 나는

잠깐 둘러보며 간식을 먹고는 35km 정도 더 달리기로 결정했다. 물을 평소보다 2L를 더 싣고 달리니 몸이 정말 무겁다. 오늘이 자전거 여행을 한 이후로 체력적으로 가장 힘든 날이다. 기진한 몸을 이끌고 오르락 내리락하며 페달을 밟아나간다.

사람의 몸이란 게 참 신기하다. 아무리 녹초가 된 상태일지라도 긍정적인 경험 하나가 우리 몸을 재충전시키고 도착지까지 기분 좋게 달릴 수 있게 한다.

오늘 나는 처음으로 나와 같은 자전거 여행자 둘을 만났다. 멀리서 다가오는데 같은 종족이라는 느낌이 확 드는데 100m 전부터 입가에 미소가 띠기 시작한다. 만나자마자 셋은 반가워서 함박웃음을 지으며 이야기를 했다. 어디서 왔냐, 오늘은 어디서 자냐, 여행을 얼마나 했냐 같은 몇 마디 대화를 주고받고는 인스타그램 아이디까지 공유했다. 둘은 영국에서 왔다는데 그중 한 명은 뉴질랜드에서만 2개월째 자전거로 여행 중. 재밌는 건 내일 내가 가기로 한 웜샤워의 호스트집을 이 둘이 어제오늘 묵었다더라. 호스트 내외분이 South Korea에서 남자 한 명 자기 집에 내일 오기로 했다는데, 내가 한국인이라는 얘기를 듣고 이 친구들이 그게 나일 거라고 생각하고 내게 그 웜샤워 호스트 집에 가냐고 물어봤다.

웜샤워 호스트 집으로 간다.

아 그리고 만약 내가 아까 지나쳤던 형편없는 캠핑장에서 잤더라면 이 둘과 함께 잤을거다. 이네들은 오늘 거기서 잘 거란다. 역시 하나보다 둘이 용감하다.

서로에게 Safe travel! 을 외치며 다시금 출발. 원기충전되니 가파른 산 하나 넘는 건 일도 아니었다. 그 친구들을 만나지 못했더라면 온갖 욕을 하며 넘었을 산이 수월하게 느껴졌다. 산을 넘고 강을 따라 계속해서 내려가니 오늘의 호스텔 도착. 이 도시는 캠핑장이 호스텔보다 비싸서 25,000원 정도를 주고 호스텔에 묵었다.

도착해서는 그대로 뻗어버렸다. 내일 10시까지 체크아웃 시간이니 그 시간 꽉꽉 채워 나가야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