반지의 제왕 속 화산넘기: 샌들신고 20km 하이킹

[뉴질랜드 자전거 여행] #07 2024.11.12 뉴질랜드 통가리로 알파인 크로싱(Tongariro Alpine Crossing) 20km 하이킹 후기

반지의 제왕 속 화산넘기: 샌들신고 20km 하이킹

2024.11.12

며칠 전부터 '통가리로 알파인 크로싱', 여기 갈지 말지 고민을 수도 없이 했다. 내가 자전거 여행을 하러 온거지 하이킹을 하러온 건 아니지 않은가. 그런데도 여기가 뉴질랜드 북섬에서 가장 대표적인 하이킹 코스에다가 특별히 입장료를 받는 것도 아니니(셔틀 버스 비용은 내야한다.)안하면 후회할 거 같기도 했다. 이름도 멋지지 않은가. Tongariro Alpine Crossing 이라니. 정말로 "통키산 등산" 정도의 이름이었으면 뒤도 돌아보지 않고 지나쳤을 거 같은데.

내 친구 관창이는 말했다. 자기는 제일 싫어하는 게 등산이고 두번째로 싫어하는게 하산이라고. 나또한 비슷한 처지이다. 어릴 때를 빼놓고는 자발적으로 등산을 간적도 거의 없거니와 등산 자체에도 흥미가 별로 없었다. 거기다가 인터넷 후기를 보니 죄다 너무 힘들단다. 하이킹 복장도 하나도 없다. 신발은 자전거 탈 때 신는 샌들이고 자전거 전용옷을 제외하면 잘 때 입는 추리닝, 그리고 자전거 바람막이와 자전거용 외투 뿐이다. 그래도 이까지 왔는데 이 정도로 유명한 건 꼭 한번 하고 가야지라는 생각과 반지의 제왕의 촬영장을 직접 내 두눈으로 보고싶다는 생각, 그리고 실제로 한 사람들은 그렇게까지 힘든건 아니라고하니 괜히 겁먹지 말고 도전해보자하고 신청을 했다.

신청 방법은 정말로 간단하다. 통가리로 국립공원 근처에 있는 캠핑장과 숙소는 죄다 이 투어와 연계된 셔틀버스가 있다고 보면 된다.(에어비앤비는 모르겠다.) 집 주인이나 캠핑장 리셉션에 가서 물어보면 등록하는 방법을 가르쳐주는데, 나는 어제 저녁 6시 넘어서 신청했는데 아무 문제 없이 진행됐다. 이걸로 돈을 버는 사람이 수도 없이 많을텐데 그렇게 허술할 리가 없다.

아무튼 오늘 아침 6시 18분에 캠핑장 앞으로 차가 온다고 한다. 새벽에 텐트 안에 모기와 사투하느라 잠을 푹 못자고 일어나 어젯 밤에 사놓은 햄버거를 먹고 어제 밤에 챙겨놓은 물 3L와 초코파이를 가방안에 쑤셔놓고 출발했다. 이 셔틀 버스는 마을 곳곳을 돌면서 각종 숙소에 있는 신청자들을 태우고 갔다.

도착하니 아침 7시 35분쯤 됐다. 알파인 크로싱은 산을 올라갔다가 원래 지점으로 되돌아오는 것이 아니라 말그대로 크로싱, 한 지점에서 산의 반대편 지점으로 건너가는 코스이고 20km가 조금 안된다. 기사님이 도착지에 셔틀버스가 첫 차는 오후 2시반, 두 번째 차는 4시, 마지막 차는 오후 5시 반에 온다고 하고 그 시간 까지 못오면 기어오라고 한다. 뭐 내가 그정도는 아니겠지.

애플워치 기록을 보니 대략 7시 41분부터 걷기 시작했다. 날씨도 좋고 컨디션도 좋고 다 좋다. 무작정 걸었다. 생각보다 내가 하이킹을 잘하네? 앞서 간 사람들을 모두 제쳐가며 걷는다. 나는 혼자라 단체로 온 사람들보다는 빠를 수 밖에. 올라가며 깨달았다. 왜 간달프가 프로도와 샘한테 반지를 맡기고 그 힘든 길을 걸어가라고 했는지를. 작고 가벼우면 오르막도 잘 오르고 잘 걷는다.

자전거를 타고 끌면서 단련된 허벅지 덕분인지(물도 1L 밖에 안마셨다.) 힘들긴 했지만 인터넷 후기만큼 힘든건 아니었다. 신발 때문에 내리막길에선 좀 고생했다.



이 산에서 느끼는 아름다움은 "예쁜" 아름다움이 아니다. 이런 종류의 컴컴하고 음침한 아름다움을 묘사하기 위해서는 모순된 형용을 할 수 밖에 없다. 걸으면서 머릿 속에 떠오르는 문장은 "지옥처럼 아름답고 천국처럼 끔찍하다." 주워들은 정보로는 남섬이 훨씬 아름답다고 하니 여긴 연옥 정도로 해두자.

무작정 걷다보니 오후 12시 반에 도착해버렸다. 나랑 비슷한 시간에 출발한 사람들 중 압도적으로 빨리 도착했다. 어쨌든 약속된 시간 2시 반까지 기다리다 차를 타고 다시 캠핑장으로 복귀. 내 모든 짐들은 하나도 없어지지 않고 다행히 잘있다. 앞으로도 도난 당하지 말고 잘 있거라.

그래도 평소에 안쓰던 근육을 쓰다보니 몸이 피곤하긴하다. 캠핑장 Registration Center에 들어가 하루 더 묵을거라고 하고 알파인 크로싱을 다녀왔다고하니 바로 뒤에 있던 여자분이 자기도 다녀왔다면서 과장된 말투로 "I'm totally exhausted.(나 완전히 지쳤어)"란다. 그 맘이 충분히 이해가 된다.

어쨌든 오늘 하루도 잘 마무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