타자의 얼굴: 자아의 감옥에서 벗어나기
[뉴질랜드 자전거 여행] #06 2024.11.11 기분 좋은 라이딩과 통가리로 산의 위엄
2024.11.11
아침을 먹기위해 어제 산 소세지를 굽는다. 너무 두꺼워서 익히기 쉽지 않았지만 요리조리 굴리고 칼집도 내가며 굽는다. 별로 배가 안고파서 하나만 먹고 나머지는 이따가 먹기위해 반합에 담았다.(음식 하나하나가 중요하다. 괜히 버렸다가 자전거 타는 중에 후회하는 순간이 반드시 오게되어있다.)



오늘은 시작점부터 끝 점 까지 계속해서 업힐이다. 누가 그러더라. 오르막에선 오르가즘, 내리막에선 내리가즘이라고. 내리가즘은 확실한데 오르막은 동의 못하겠다. 통가리로 국립공원이 위치한 이 곳은 뉴질랜드 북섬에서 고도가 가장 높은 지역이다. 왠지 며칠 전부터 오르막이 많더라니.
오늘 라이딩은 이상하리만치 기분이 좋다. 오르막은 힘들지만, 한번씩 나타나는 평지에서는 노래도 부르고 소리도 지르고 신나게 달렸다. 이유는 분명 햇빛때문이겠지. 뉴질랜드에 오고나서 줄곧 흐린 날만 지속됐는데 오늘은 이때까지 중 가장 맑은 날이다.
어제는 비가왔다. 혼자 자전거 여행을 할 때 비가오면 두렵다. 밤이 되면 두렵다. 높은 산으로 혼자 올라가는 것도 두렵다. 비가오는 밤에 혼자 텐트안에 있으면 두렵고 외롭다.
태양에는 특별한 힘이 있다. 내 텐트와 빨래감을 말려주는 것은 물론이거니와 자욱한 안개와 구름을 걷어내준다. 이런 물리적인 작용보다 중요한 것이 우리 마음에 작용하게 되는데, 햇빛은 내 옷과 피부를 뚫고 들어와 피와 심장, 뇌까지 들어간다. 분명히 아직까지 밝혀지지 않은 F광선 따위가 햇빛에 존재해 혈액 속에 코르티솔을 말려버리고 엔돌핀 같은 호르몬을 생성해내는 것이 분명하다. 이 광선은 내 마음으로 들어와서 두려움과 외로움의 장막을 걷어내고 쾌활함과 용기를 불어 넣어준다.
나는 위대한 예술 작품이나 문학 혹은 경외감을 느끼게 하는 자연은 자기 자신을 넘어서게 하는데 그 의의가 있다고 생각한다. 많은 사람들의 시선은 대게 밖으로 향하고 있는 듯 하지만 실상은 자기 내면을 향하고 있을 때가 많다.
예를들어, 책이나 영화, 드라마를 보면서 등장인물의 감정이나 상황에 이입하기 보다는 그 사람의 특별함에 자기 자신을 동일시 함으로써 얻는 대리만족'만'을 구하는 사람은 좋은 독자나 관객이라고 할 수 없다. 또 만약 누군가가 '예술 작품을 즐길 줄 아는 나'라는 이미지'만'을 얻기 위해서 전시회에 간다면 이 사람은 사방이 거울로 막힌 방 안에 갇혀있는 셈이다. 어디를 보든 자기 자신만을 비추는 거울 방에 말이다. 보티첼리의 ‘비너스의 탄생’을 포르노물로만 소비하는 사람도 이와 똑같이 어리석은 감상자이다.
하지만. 초기현대영어의 특징을 공부하기 위해서 셰익스피어의 햄릿을 읽는 사람이나 지구 자기장을 연구하기 위해서 오로라를 관찰하는 사람은 반드시 자기가 원래 찾고자 했던 것 외에 다른 것을 얻게 마련이다. 이런 류의 위대함 앞에 선 사람은 자기가 가던 길로만 가는건 불가능하다.
마찬가지로 이런 강렬한 자연 경관 앞에서는, 비록 순간일지라도 우리는 우리만을 비추는 거울에서 눈을 돌려 스스로의 밖으로 벗어날 수 있다. 도약이다. 초월이다. 이런 감탄의 순간, 경이의 순간을 통해서 우리는 새로운 시각을 얻는다. 이를 통해 타인을 더 깊이 공감할 수 있게된다. 나 뿐만이 아니라 너를 알게된다. '나만 있는 세계'와 '너도 있는 세계'는 전혀 다른 세계이다.



오늘 나에게 있어 통가리로 산이 이와 같았다. 순간 순간 느껴지는 경외감과 숭고함. 철학자 칸트는 ‘숭고’는 단순한 아름다움을 넘어서, 인간의 감각과 이성을 압도하는 경험이라고 했다. 바로 오늘 내가 받은 느낌이다. 찰나의 순간이지만 나만 있는 공간에서 너도 있는 공간을 느꼈다.
어쨌든 처음 목표했던 캠핑장에 도착했다. 무인 캠핑장이고 인터넷으로 예약을 하란다. 사이트 접속은 안되고 주변에 물이라곤 냇가 물 뿐. 내가 가진 음식으로는 내일 아침까지 버티기는 힘들다. 이 근방 수키로 내에는 사람이 살만한 곳이 하나도 없다. 여긴 얼른 포기하고 주변을 더 알아보는데 5km 정도 더 가면 캠핑장이 있더라. 하지만 그 캠핑장도 오로지 캠퍼밴만 수용하고 텐트는 못친다.
하는 수 없이 30km를 더 달린 끝에 Raetihi라는 마을에 도착.(뉴질랜드 지명은 마오리어로 된 곳이 많아서 도무지 어떻게 발음하는지 모르겠는 곳이 태반이다.)
오늘도 긴 하루의 끝.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