자전거 여행의 묘미: Marton 부부와의 웜샤워
[뉴질랜드 자전거 여행] #09 2024.11.14-15 첫웜샤워 체험기 자전거 여행자 숙박 커뮤니티, 웜샤워 호스트 집에서 보낸 이틀
2024.11.14
호스텔에서 최대한 있는 힘껏 늑장을 부리다가 체크아웃 시간인 10시에 거의 딱 맞춰서 출발했다. 텐트에서 자건 침대에서 자건간에 몸이 찌뿌둥한건 변함없다. 오늘은 이 호스텔에서 40km 정도 떨어진 작은 마을 Marton 이란 곳에 있는 노부부 웜샤워 호스트의 집으로 간다. 40km면 좀 서둘러서 가면 2시간 반 안에 도착할 수 있는 거리. 너무 빨리 도착하면 실례가 될까봐 오늘 머물렀던 도시 Whananui 시내를 한적하게 돌아본다.


이 도시는 꽤나 컸다
우리나라에 비할 바는 안되지만 뉴질랜드 치고는 꽤나 큰 도시이다. 뉴질랜드 첫날부터 젓가락이 없어서 라면을 계속해서 집게로 먹었던터라 젓가락을 구하기 위해서 돌아다녔다. 아시안마트에는 젓가락을 다섯세트 단위로 팔기에 포기하고 일식집으로 갔는데 여기는 일회용 젓가락 밖에 없다더라. 아쉽지만 젓가락은 포기. 여러 구제 옷가게도 둘러본 다음 Whanganui를 빠져나온다.
본격적인 도로로 진입을 해서 한창 달리던 도중 3명의 도보여행객을 만났다. 설마 국토대장정 같은걸 하나 싶어 물어보니 맞단다. 걸어서 이 나라 전체를 다 둘러볼거라더라. 최소 2000km 일텐데 대단하다 싶었다.


아무리 천천히 가도 역시나 물리적인 거리가 짧다보니 두시가 채 되기 전에 Marton 도시에 도착해버렸다. 점심이라도 먹고가자 싶어서 중간에 있는 가게에 들러서 샌드위치와 망고주스를 사먹었다. 이 나라는 어느 도시를 가든지 항상 이 비슷한 종류의 가게가 있는데, 내가 들른 곳은 모두 이민자들이 운영을 했다.(항상 엄청나게 친절하다.) 샌드위치/햄버거/음료수/베이커리류/치킨을 함께 파는 가게.
호스트에게 세시 반쯤 도착할거라는 문자를 남기고 이곳에서 시간을 죽인후 세시 쯤 다시 출발. 집 앞에는 자전거 모양의 장식이 있는데 보자마자 자전거를 정말로 사랑하는구나 싶었다. 집앞에 잠깐 앉아있는데 할아버지 한 분이큰 개를 자전거에 매달고 들어오신다. 오시면서 "Are you a good cook?" 이라하시는데 나는 "No, I'm a terrible cook."이라 응수했고 돌아오는 대답 "Damn"


인상은 시골에 가면 흔히 볼 수 있는 할아버지 인상. 말투나 톤도 우리나라에 있는 농사짓는 할아버지의 느낌이다. 소 세마리와 돼지 두마리, 염소 세마리, 닭들을 키우는데 어쩌다보니 농가체험을 했다. 얘네들 먹이도 주고 닭들을 잡아 들어 달걀도 뺏어오고.



내가 할 수 있는 요리라곤 라면과 간장계란밥 뿐이라 라면을 차려드리기로 마음을 먹었다. 계란도 풀고 밥도 지어서. 24년된 닛산차를 타고(최근에 클러치를 바꿨다고 계속 자랑하셨다.) 근처 수퍼마켓에 가서 쌀과 라면, 그리고 술을 좀 샀다. 여기는 맥주가 너무 비싸다고 얘기했더니 아마 술에 관세를 많이 붙여서 그럴거라고 하신다.
집으로 돌아와 밥을 짓는데 아내 분이 들어오신다. 아주머니와 할머니 중간 정도 나이의 인상 좋으신 분이다. 라면을 대접하면서 너무 짜거나 맵진 않을까 걱정했는데 생각보다 잘 드신다. 아마 내가 앞에 있으니 싫은 내색을 하지 못하셨던거겠지만. 그래도 한국의 Soul Food라고 소개하니 썩 맘에 들어하시는 눈치였다.
밥을 먹고도 내일 날씨, 내려가는 자전거 길에 대해서 몇시간이고 얘기를 더 나눈 후에야 내 잠자리로 올 수 있었다. 내일은 비가 하루종일 온다고 하루 더 묵고가라고 하셔서 기다렸다는 듯 그러겠다고 했다. 정말로 감사합니다.


2024.11.15
오늘 하루 종일 비가 올 예정이라 어제 웜샤워 호스트인 Neil 아저씨, Lorraine 아주머니 집에 하루 더 묵게 되었다. 오늘은 하루 종일 방에서 쉬면 되니 마음이 편하다. 두 분은 오늘 아침에 볼 일이 있어서 나가시고 4시쯤 들어오신다고 하셨다. 집 문을 열고 갈 테니 필요하면 먹고 싶은 것도 먹고 요리도 하라고 하신다. 정말 친절하신 분들이다.



너무 좋은 게스트룸이었다.
아침으로 간단히 가방에 있는 빵과 쿠키를 먹고 누워서 유튜브도 보고 책도 읽고 맘껏 뒹굴거린다. 점심으론 동네 마트에 들러서 삼겹살과 샌드위치를 사 와서 먹고는 계속해서 편히 쉬었다. 낮잠도 자고.
벌써 자전거 여행을 한지 이주 가까이 되어가는데도 허벅지 근육통은 항상 나를 따라다닌다. 엄청 쑤시고 아픈 건 아니지만 허벅지나 엉덩이를 손으로 눌러보면 항상 아프다. 언제쯤 적응이 될는지는 모르겠다. 한참을 휴식하다 보니 Neil 아저씨가 어떤 기다란 철 막대기를 하나 들고 오신다. 내가 젓가락을 잃어버렸다고 하니 젓가락을 하나 만들어주시겠다고는 어디서 그걸 찾아오신 거다. 그러면서 한 시간 뒤에 저녁을 먹으러 오라고 하셨다.



아주머니가 자기는 모든 재료를 한데다가 넣어서 전부 섞어 먹는 것을 좋아하신단다. 우리 엄마랑 똑같다. 전통적인 뉴질랜드 음식이라고 물으니 딱히 그런 건 아니고 그냥 잡탕이라고 하신다. 그런데도 기가 막히게 맛있어서 세 그릇이나 먹어버렸다.
웜샤워 호스트들이 지나가는 여행객들에게 무료로 잠자리를 제공하고 음식과 각종 필요한 것들을 전부 제공하는 대신 그들이 얻는 것은 무엇일까. 그들은 여행객들의 이야기를 듣는다. 그들은 다양한 문화적 배경을 가진 자전거 여행자들에게서 듣는 이야기들을 사랑한다. 한국에서는 식탁에서 어른이 숟가락을 먼저 들기까지 기다린다든가, 내가 자꾸 무의식적으로 나에게 양보를 해주는 차들에게 고개를 숙여 인사하게 된다든가(여기서는 손이나 손가락을 들어 감사 표시를 한다.) 하는 그런 시시콜콜한 이야기들. 그들에게는 일반적이지 않은 내 리액션도 꽤나 재밌나 보다. 유교 문화권의 전통에 익숙하지 않은 그들은 나의 이야기를 꽤나 진지하고 재밌게 듣는다.
물론 이야기를 하는 것도 좋아한다. 지도를 보여주며 이 길은 차가 많으니 피해라, 이 길로 돌아가면 훨씬 더 아름다운 풍경을 볼 수 있다 같은 이야기들. 역사 속에는 언제나 이야기를 좋아하는 이들이 있었고 이 사람들도 그들 중 하나이다.
저녁을 먹은 후에는 함께 넷플릭스를 보았다. 에베레스트를 최초로 10번 등정한 최초의 여성에 관한 이야기.
벌써 10시가 다 되어간다. 잘 시간이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