마운트쿡 덤불 뒤에 수상한 텐트: 오스트리아 친구 Hannah와의 재회
[뉴질랜드 자전거 여행] #18 2024.11.30-12.01 후커밸리 트레킹 후기, 마운트쿡 라이딩
2024.11.30
아침에 유튜브 숏츠를 하나 봤다. 뉴질랜드 여행에서 반드시 가야할 탑 5위를 선정해놓았는데 그 사람은 1위로 마운트쿡을 꼽았다. 예전에 본 자전거 여행기에서도 마운트쿡이 너무 좋았다는 사람을 본 적이 있다.
마운트 쿡으로 가려면 내가 가는 경로를 벗어나야 한다. 그곳으로 가는 길은 딱 하나밖에 없어서(60km 직진이다. 중간에 옆으로 새는 길이 하나도 없다. 오로지 직진) 올라갈때와 내려올 때 똑같은 길로 라이딩해야한다. 텐트를 정리하면서 막연히 마운트쿡으로 가야겠다는 생각이 들어서 그리로 경로를 정했다. 숙소도 알아보지 않은채.
마운트쿡은 뉴질랜드에서 가장 높은 산이고 서해 알프스지역에 있어 사계절 눈으로 덮여 있는 곳이다. 헬기를 타고 올라가면 빙하 하이킹도 할 수 있다.(너무 비싸다.) 보통은 거기서 왕복 세시간 코스인 후커밸리 트래킹을 하고 온다. 캠핑장이 하나 있길래 거기서 자면 되겠다 생각하고 갔다.
푸카키 호수를 끼고 위로 올라가는 루트인데 여기도 길이 절경이다. 올라갈수록 만년설은 가까워지고 주변 들판은 자연 그대로의 모습을 간직한채 몽환적인 느낌을 자아낸다. 반지의 제왕의 배경을 보는 듯한 판타지영화의 느낌. 이런 곳에서 인터스텔라 OST를 들으면서 라이딩하면 마치 다른 행성에 있는 듯한 느낌을 받을 수 있다.
요며칠간 몸은 힘든데 이 아름다움을 한 순간도 놓치기 싫고 또 다른 아름다움을 하루빨리 보고 싶다는 생각에 계속해서 페달링을 하게된다. 세이렌의 아름다움에 유혹당하지 않으려 부하들의 귀를 밀랍으로 막고 자신을 배의 돛대에 단단히 묶었던 오디세우스처럼 나도 그러한 대책이 필요한 것일까.





도착하고 캠핑장 온라인 예약 안내판이 보여서 들어가봤다. Not Available Sites. 하… 여기서 못자면 해지기 전까지 다시 트위젤 마을로 내려갈 자신이 없다. 좌절한 표정을 보고선 어떤 할머니 한분이 다가와 문제가 있냐고 물었다. 자초지종을 설명하니 캠핑장 저 뒤쪽으로 가서 텐트를 치고 몰래 자도 될거라고 한다. 덤불 뒤쪽에서 몰래 친 텐트를 하나 봤다며.
그쪽으로 가니 진짜 텐트가 있다. 어라, 어제 오스트리아 친구의 텐트와 비슷하게 생겼다. 왓츠앱으로 그 친구에게 문자를 보내니 자기가 맞다고한다. 어제 자기도 자리가 하나도 없었는데 인포메이션 센터로 가니 텐트를 칠 수 있게 해줬다면서. 가격은 17달러였나.
다행히 나도 결제를 마치고 그 근처에 텐트를 쳤다. 나 정도 규모의 텐트는 캠핑장 예약이 가득차도 구석탱이 어디에서든 자리를 마련할 수 있다. 이 친구는 어제 후커밸리 트래킹을 마쳤고 오늘은 옆에 더 가파른 트래킹을 하고왔다고 한다. 오후 5시 넘어서 후커밸리 트래킹을 한번 더 할거라길래 같이 가기로 했다. 해가 뉘엇뉘엇할때가 훨씬 더 좋다고 한다.


우리가 트래킹을 올라갈 때는 대부분의 사람들이 하산할 시간이라 한산하고 좋았다. 아마 피크시간에 올라갔다면 너무 북적거리고 더웠을거다. 정상에는 빙하가 녹은 물로 이루어진 탁한 색의 호수가 하나 있는데 나는 거기서 과자를 하나 까먹고 물장구를 치고 놀았다. 그 친구는 책을 하나 읽다가 그늘에 앉아서 잠을 잔다.
오스트리아는 중학교부터 직업전문과정으로 따로 나뉘어져 있는 듯한데 이 친구는 그쪽으로 간 듯했다. 호텔, 레스토랑 같이 사람을 응대하는 서비스직 교육을 받았고 앞으로 진로도 그쪽으로 정할거라고 한다. 오스트리아를 오스트리아어로 어떻게 발음하는지 배웠는데 까먹었다. 나는 Korea의 기원도 설명해주고 한국, 대한민국을 어떻게 발음하는지 알려줬다.
끝나고 내려오니 8시 반 정도 됐다. 텐트 근처에서 자리를 펴놓고 간단하게 저녁을 해결하고는 취침모드.






이 오스트리아 친구의 이름은 Hannah

2024.12.01
12월 10일 저녁에 크라이스트처치에서 방콕으로 가는 비행기를 예약해놨다. 그래서인지 현재 일정이 조금 애매하다. 퀸스타운을 최종 목적지로 잡으면 여기서 3일이 걸리고 조금 더 밑으로 내려가서 테아나우까지를 목적지로 잡으면 5일이 걸린다. 그런데 테아나우는 작은 마을이라서 크라이스트처치로 향하는 버스가 없다. 그렇다는건 퀸스타운을 최종목적지로 설정해야 하는데 그렇게하면 시간이 며칠 남는다.
어제 만났던 오스트리아 친구와 작별인사를 하고 이틀전 웜샤워로 묵었던 트위젤이란 마을로 달렸다. 거리는 67키로 남짓. 거기가서 생각해보기로 하고 무작정 라이딩을 시작했다. 어제 왔던 길인데 다행히 오르막보다 내리막이 많다. 날씨도 맑아서 올라올 때 보지 못했던 멋진 경치를 또 느낄 수 있었다.
어제 마운트쿡에는 딱히 음식을 살 곳이 없어서 오늘은 엄청 배가 고픈 상태로 달렸다. 달리면서 “아 배고파!”라고 한참을 소리지르면서. 가방에 신라면이 하나 있었는데 중간에 있는 쉘터에서 부셔서 먹었다. 먹고 있을 때 인도인 한명이 다가와서 자기도 자전거 여행을 좋아하는데 인스타그램 아이디를 알려달라고 해서 알려주었다. 팔로워가 한명 늘었다.
마운트쿡과 트위젤 사이에는 기가막힌 위치에 전망대가 하나 있는데 내가 자전거를 타고 그쪽으로 향하니 대포만한 카메라를 든 사람들이 우르르 내려와 내 사진을 찍었(는 듯 했)다. 기막힌 우연의 타이밍일지도 모르지만 만약 내가 그런 카메라를 들고 있었더라도 자전거를 타고 오는 사람이 있었다면 저 배경으로 사진을 찍었을 것이다.


트위젤에 도착해서 마트로 바로 직행해서 할인하는 벽돌 두개 크기의 빵과 간식 몇가지를 사서 주변 의자에 앉아서 우걱우걱 먹는다. 오늘은 유난히 햇빛이 강하다. 그래서 그냥 트위젤 주변에 있는 캠핑장으로 갔다. 오후 세시 반 밖에 안된데다가 기력이 없어서 자전거를 방치해놓고는 주방으로 가서 방전된 배터리들을 충전하고는 노트북을 꺼내 블로그를 썼다.
밖에 있는 한 한국인 커플의 소리가 들렸다. 예전같았으면 한국인이면 반가와서 바로 인사를 했을텐데, 이전에 테카포에서 캠핑을 할 때 한국인 신혼부부에게 괜히 아는척 했다가 상대방이 엄청 불편해했던 경험을 한 적이 있다. 그래서 그 이후로는 한국인을 만나도 불편해할까봐 딱히 아는척을 하지 않게됐다.
한참 노트북을 만지고 있는 찰나에 한국인 남자분이 먼저 나에게 Hello 하고 인사를 건넨다. 나는 한국인인걸 알고 있었기에 “저 한국인입니다.” 하고 인사를 드렸다. 자전거 여행을 하고 있다고 하니(복장이 자전거용 옷이었다.) 본인도 2006년 경에 유럽에서 3개월 이상 자전거 여행을 한 적이 있다고 하신다. 그러곤 감사하게도 저녁을 같이 먹자고 하셨다.
저녁은 소고기와 연어. 푸카키 호수를 지나면서 커다란 연어 양식장을 몇 번이나 지나고 연어 낚시하는 사람을 수도 없이 지나왔지만 막상 슈퍼에 갔을 땐 비싸서 사먹지 않았던 연어이다. 그 좋은 뉴질랜드산 연어를 공짜로 얻어먹을 수 있었다. 저녁을 먹으면서 많은 얘기를 나눴다. 자전거 여행을 했던 경험이 있으셨던 분이라 자전거 여행자만의 고충을 다 알고 있었기에 공감이 엄청 많이 됐다. 내가 힘들걸 알고 어떻게든 도움을 주시고 싶어하는 마음이 표정과 행동에서 나에게 그대로 전달이 됐다.
자전거는 사실 맥주를 마시려고 타는 스포츠이다. 이 사실을 모르는 사람은 인생에서 엄청나게 행복한 사실 하나를 놓치고 사는 것이다. 오늘은 이 커플에게서 맥주를 3캔이나 얻어먹었다. 무지 행복했다.
그 당시에는 네비게이션이나 핸드폰 같은 전자기기가 없어서 종이지도를 들고 다녔다는데 지금의 나로서는 상상이 안된다. 길을 찾는 능력이 남들보다 좀 떨어지는 편이라 내가 만약 그때 자전거여행을 떠났다면 내 자전거 여행의 난이도는 대폭 상승했을거다.
아무리 웜샤워 호스트와 얘기하고 캠핑장에서 친구를 만나서 대화한들 한국인으로서 풀리지 않는 그 무언가가 마음 속에 남아있기 마련인데 간만에 맥주를 들이키면서 한국 사람과 함께 대화하니 회포를 푼 느낌이 들었다. 기분 좋은 하루의 마무리.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