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런 풍경을 살다가 보네: 테카포와 푸카키 호수
[뉴질랜드 자전거 여행] #17 2024.11.28-29 테카포 호수 옆 캠핑장에서 하루를 보낸 후 푸카키 호수로의 라이딩. 아름다움에 눈이 멀다.
2024.11.28
아침에 일어나니 텐트가 축축하다. 비가 오지도 않았는데 산으로 둘러쌓인 지형이라서 많이 습한가보다. 텐트가 잘 마르지 않아 두시간을 허비했다.(여전히 인터넷은 안된다.) 결국 다 말리지 못하고 출발했다. 겨우 캠핑장을 빠져나와서 좀 달리다보니 통신신호가 잡힐듯 말듯 한다. 18시간을 인터넷 없이 생활했다. 우리나라에서 비행기 타는 경우를 제외하고 18시간동안 인터넷 없이 살 일이 있을까? 곰곰이 생각해보면 나는 군대 이후로 이런 경험은 처음이다.
어제 묵은 캠핑장은 DOC캠핑장(정부 운영 캠핑장)이다. 가격은 저렴한데 항상 보면 위치가 이상한데 있는 경우가 많아서 잘 가지 않게 된다. 어제도 여기 들어오느라 비포장 도로를 한참 달려 들어왔다. 말인즉슨 비포장 도로를 한참 달려 나가야된다는 뜻이다. 이런 길에 차라도 한대 오면 모래 폭풍이다. 그걸 온 몸으로 다 맞아야 한다.



겨우 빠져나와 Fairlie라는 작은 마을에 도착해서 마실 물을 보충하고는 다시 길을 나선다. 여기서 테카포까지 50키로 남짓이고 거의 오르막이다. 오늘 오후부터 상당히 강한 바람이 예보되어 있어서 최대한 빨리 테카포에 도착하는 것이 좋다. Burkes Pass라는 희한한 잡동사니들을 파는 구역을 지나서 언덕을 올라가는데 엄청나게 강한 돌풍이 몰아친다. 일기예보를 확인해보니 이쪽에 오늘 최대 24m/s의 돌풍, 환산해보면 최대시속 86.4km의 돌풍이 정확히 내 정면에서 불어온다. 도저히 자전거를 탈 수가 없어서 끌어보지만 한발자국 움직이는 것도 힘들다.

여기서 선택을 해야한다. 미친척하고 갈지(20km 정도 더 남았다.) 되돌아 갈지. 생각하는 중에 어떤 차에서 한 남자가 나를 향해 소리친다. “Go back! XXX” 뒤에 XXX는 정확히 못들었는데 표정으로 미루어짐작건대 욕설이 아닐까 싶다. 인종차별적인 의도였는지, 바람이 부는데 어떻게 가냐며 걱정해주는건지 알 길은 없다. 안되겠다. 포기. 아무리 고집있는 자전거 여행자도 여기서 앞으로 가는건 자살행위란건 직감할 수 있다.
Burkes Pass로 다시 돌아왔다. 커피를 한잔 사서 마시면서 생각해보았다. Fairlie로 돌아가 캠핑을 하고 내일 다시 테카포로 갈 지, 오후 5시가 지나면 바람이 잦아드는데 그 때 다시 출발할지. 내 여행 경로는 상당히 즉흥적이다. 밤에 생각한 경로가 아침에 바뀌기도하고 가다가 중간에 경로를 틀기도 한다. 지금 1시 30분 정도 됐으니 여기 앉아서 찬찬히 생각해보기로 한다.
문득 히치하이킹을 감행해보자는 생각이 들어 30분 정도 시도했다. 결국 실패. 내 자전거를 실을 수 있는 차는 많이 없다. 끽해봐야 픽업트럭 정도? 그것도 뒷 짐칸이 비어있어야 한다. 남섬은 인구가 많이 없어서 요즘같은 여행 성수기때 길에 돌아다니는 차들은 대부분 여행자들이 빌린 캠퍼밴이나 렌트카다. 내 자전거를 수용해줄 수 있는 공간은 없을거다.
오후 5시에 다시 출발하기로 마음먹고는 앉아서 기다렸다. 오후 3시 반쯤되니 어떤 픽업트럭 하나가 이 구역에 차를 세워서 볼일을 보러갔다. 저 차 주인이 돌아오면 히치하이킹을 부탁드려야지 마음 먹던 찰나에 다른 자전거 여행자 두명이 다가온다. 간단히 인사를 나누는데 픽업트럭 주인아저씨가 돌아오길래 잽싸게 히치하이킹을 부탁했다. 결론은 OK. 두 명의 자전거 여행자들의 얼굴을 보기 너무 미안해서 시선을 회피한채 내 자전거를 싣고 테카포로 출발했다.


도착해서 어머어마하게 아름다운 테카포 호수를 보며 캠핑장 쪽으로 라이딩했다. 중간에 유명한 선한목자교회도 보였는데 날씨가 약간 흐려서 내일 맑아지면 다시 와야겠다 생각하고 지나쳤다. 캠핑 가격을 물어보니 27달러. 인터넷으로 봤을 땐 두배 더비쌌는데 역시 현장에서 직접 확인하는게 제일이다.
Lake Edge Holiday Park. 여기는 내가 이제껏 와본 캠핑사이트 중 가장 크고 사람이 많은 곳이다. 테카포 지역이 관광지로 유명하다보니 한국 사람들도 상당수 보였다. 내 텐트 옆자리 친구는 오스트리아에서 온 여자애이다. 이름은 Hannah Winkler. 같이 저녁을 먹으면서 얘기를 나눴다. 호주에 몇달 있었는데 호주 워킹홀리데이 비자를 받기위해 영어점수가 필요하단다. 독일인은 영어시험이 필요업는데 오스트리아 사람이라서 영어점수가 필요하다는게 억울한 뉘앙스다. (영어로 말은 진짜 잘한다.) 뉴질랜드에 놀러오는겸 영어시험보는 겸해서 넘어왔다고 한다. 유독 밝고 에너지가 넘치는게 꼭 초등학교때 어떤 짝꿍과 얘기하는 거 같았다.(짝꿍 이름과 얼굴은 기억나지 않는다.)
밥먹고 돌아오니 아까 밑에서 봤던 자전거 여행자 둘이 자전거를 끌고 들어온다. 죄책감과 반가운 마음이 동시에 들면서 “배신해서 정말 미안하다.”라고했다. 독일에서 온 부자로 보이는 듯한 관계. 원래 한국 자전거 여행을 계획했는데 날씨가 추워져서 뉴질랜드로 목적지를 바꿨단다. 연락처를 교환하고 뮌헨에 오면 자기가 꼭 재워주겠다고 했다.
참 다사다난한 하루다.





이 캠핑장이다. 오스트리아 친구 Hannah는 인터넷으로 예약해서 나보다 2배나 돈을 더 많이 줬다.(못 돌려받음) 나는 현장예약해서 싸게 잘 수 있었고.
2024.11.29
일어나서 텐트 밖으로 나오니 뷰가 예술이다. 이 맛에 캠핑하는거지. 어제 오스트리아 친구는 앞가방, 뒷가방, 손가방까지 도합 25kg 정도 되는 가방을 매고 히치하이킹으로 여행하고 있다. 그와중에 책도 4권, 신발도 네켤레, 텐트는 무려 3인용 텐트를 들고다니는 이해가 안가는 친구다. 본인은 under 20kg이라고 주장하는데 내가 들어보니 99% 20kg이 넘는다.
내 목적지는 트위젤에 있는 웜샤워 호스트집, 이 친구는 히치하이킹해서 마운트 쿡으로 갈거라고 한다. 같이 걸어서 테카포에 있는 마트에서 각자 장을 보고 그 앞에서 간단히 음식을 먹고는 Goodbye 작별인사를 나눴다.
한달 정도 여러 유럽인들을 만나봤는데 이 사람들은 아직 아날로그적인 면모가 많다. 종이책을 선호하고 메모지와 펜으로 뭔가를 끄적거리는 경우도 많이 보았다. 이 친구도 아침에 보니 연습장에다가 뉴질랜드 지도를 희한하게 그려놓고는 자기 여행 계획을 세우고 있었다. 어딘가에 앉아서 줄창 핸드폰만 들여다보고 있는 무리가 있으면 100% 한국인이다.(나도 똑같다. 나처럼 한달에 데이터 100기가를 산 사람을 여기서 아직 보지 못했다.)




트위젤로 가는 길은 경이롭고, 황홀하고, 초현실적이고, 찬란하게 숨막히는 경치였다. 테카포 호수에서 푸른 운하와 푸카키 호수를 지나는 경로였는데 단연코 내 인생에서 가장 아름다운 날이었다. 운하 부근에는 연어 양식장도 있고 많은 사람들이 연어 낚시를 즐기고 있었다. 완벽한 날씨 속에서 더할나위 없는 라이딩을 즐겼다. 특히 운하를 지나서 푸카키 호수쪽으로 내려가는 다운힐이 압권이었다. 세상 모든 사람들에게 자전거를 타고 이 경로를 따라 라이딩하라고 권하고 싶다.
아름다운 풍경을 보면 그 풍경에 넋이 나가서 입을 벌리고 정신없이 감탄을 함과 동시에 여러 가지 새로운 생각들이 내 가슴 속에서, 머릿 속에서 밖으로 마구마구 튀어나온다.
우리 머릿속에 있는 어떤 생각들은 그 경계가 너무 삼엄해서 평상시에는 밖으로 빠져나오지 못하지만, 아름다운 풍경을 볼 때 그 경비병들이 풍경의 아름다움에 눈이 멀어 잠깐 한눈을 파는 사이에 내 머리 속 깊은 곳에 자리잡았던 생각들이 밖으로 삐져나오는 게 아닐까.
아니 어쩌면, 정말 어쩌면, 생각이 내 머릿 속에서 나오는 것이 아니라 밖에서 내 안으로 들어오는 것일지도.







푸카키 호수에선 흥분을 주체못해 몇번이나 자전거에서 내렸다. 괜찮아 보이는 위치에서 물에도 들어가고 팬티만 입고 누워있기도 헀다. 어제부터 감기기운이 있어서 물을 많이 마셔 때마침 물도 떨어져, 푸카키 호수의 물을 정수필터를 통해서 마셨다.
웜샤워 호스트에게 오후 5시 정도에 간다고 했기에 더 시간을 지체하지 못하고 트위젤로 향했다. 웜샤워 호스트는 20대 중반정도 돼보였는데 올해 미국서부 자전거 여행을 마치고 돌아와서는 내가 처음으로 초대하는 손님이라고 한다. 룸메이트랑 같이 살고 있어서 집 안에서는 못자고 뒷마당에 텐트를 칠 수 있게 해주었다. 물론 빨래도 했고. 아쉽지만 음식을 제공해주지는 않아서 근처 마트에서 고기와 맥주를 사와서 뒷마당에서 가스로 요리해먹었다.
내일은 와나카 쪽으로 내려가야겠다고 막연히 생각하고는 잠에 들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