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4년째 집 없이 캠퍼밴에 사는 자연인 John
[뉴질랜드 자전거 여행] #16 2024.11.26-27 인터넷이 전혀 안터지는 숲속 캠핑장에서 보낸 하루
2024.11.26
처음 뉴질랜드로 오는 비행기를 탈 때 만났던, 뉴질랜드에 30년 사신 한국 아저씨가 말했다. 크라이스트처치에서 퀸스타운으로 가는 길은 단 한순간도 눈 감고 싶지 않을 정도로 아름답다고.
오늘은 크라이스트처치를 빠져나가는, 그 경로의 첫날이다. 며칠 전부터 기대를 많이 했었다. ChatGPT의 답변도 그런 내 기대에 기름을 부어주었다. 하지만 오늘 하루는 정말 실망스러운 날이었다. 몇 가지 이유가 있다.
첫째, 날씨가 너무 흐렸다. 흐린 날씨는 경치 감상을 할 수가 없다. 자전거는 두 가지 연료로 달린다. 내가 먹는 음식을 통해 나오는 물리적인 에너지, 라이딩을 하면서 보게 되는 아름다운 경치와 향기. 배는 고파도 어느 정도 달릴 수 있지만 잿빛 구름 가득 낀 살풍경을 달리노라면 힘이 나지 않는다. 70km만 달려도 녹초가 된다. 반면 햇살 좋은 날 아름다운 풍경을 감상하며 달리면 100km가 넘어도 힘들지 않게 갈 수 있다. 만약 노을이 하늘에서 3시간 동안 지속된다면 나는 50km를 기분 좋게 더 달릴 수 있을 거다.
둘째, 도로 상황. 대도시 주변이라서 그런지 차가 너무 많았다. 무엇보다 트럭이 너무 많다. 갓길이 없어서 하이웨이 갓길로 달렸는데 차 때문에 스트레스를 너무 많이 받았다.
셋째로 내가 너무 큰 기대를 했다. 아마 정말 아름다운 길들은 이틀 뒤 웅장한 설산이 보이면서부터 시작일 텐데 그 아저씨의 말을 너무 순진하게 믿은 탓이리라.
이 아저씨가 내게 한 말 두가지가 기억에 남는데, 둘다 공감하지 못하겠다. 하나는 오늘 겪은 이 길, 그리고, 그 아저씨는 뉴질랜드에 오면 주의해야 할 몇가지 사항을 알려주었었다. 누군가 뭘 줄 때 두손으로 받지 말라는 것, 인사로 고개 숙이지 말라는 것, 그리고 I'm sorry 하지 말라는 것이다. I'm sorry를 하게 되면 내가 한 일에 대해서 책임을 져야할 일이 생기기 때문에 되도록이면 미안하다고 말하지 말라고 했다. 근데 내가 느낀 바, 여기 온 첫날부터 지금까지 뉴질랜드인을 포함한 사람들 전부 I'm sorry를 일본인이 스미마셍하듯이 한다. 실수로 터치하면 I'm sorry, 우연히 길을 막고 있으면 I'm sorry. 아저씨는 아무래도 산전수전 다 겪은 오래된 이민자이기 때문에 이런 태도를 몸에 익힌 듯 하다.
오늘은 캠핑장 근처에 있는 마트에서 고기를 사서 구워 먹었다. 돼지 어깻살인데 내가 할 수 있는 요리라곤 라면, 파스타, 밥, 구운 고기가 전부이다. 항상 느끼는 거지만 나는 캠핑장에 온 다른 방문객들과 비교가 많이 될 정도로 초라한 음식을 먹는다. 그래도 아직까진 큰 불만이 없다. 그렇게나 공들이고 시간을 들여서 손질하고 다듬은 음식을 먹을 생각도 없고.


2024.11.27
오늘은 제발 멋진 풍경이 나를 반겨주었으면 하는 기대로 출발을 했다. 목적지는 근처 마을과 한참 떨어진 곳에 있는 숲속에 있는 캠핑장이다. 날씨는 여전히 흐리고 풍경은 여전히 그닥 좋지 않다. 크라이스트처치 지역은 바다를 끼고있는 넓은 평야를 특징으로 하는데 그래서인지 이틀동안 큰 산이나 언덕이 없는 평평한 구간이 계속된다. 자전거를 타기는 편하지만 이런 지형에서 멋진 풍경을 기대하는 것은 힘든 일이다.
오늘도 첫 날 공항에서 만났던 그 아저씨를 원망하게 된다. 그 아저씨는 분명 크라이스트처치에서 퀸스타운으로 가는 길은 ‘한번도 눈을 감고 싶지 않을 만큼 아름답다.’고 했다. 그런데 이틀간 내가 본 풍경은 평범한 뉴질랜드의 풍경. 처음본다면 아름답겠지만 한달째 소, 말, 양, 초원을 보고 있는 내 입장으로선 그리 새로울게 없다. 그 얘기만 듣지 않았더라면 경로를 다르게 짰을텐데…
왜 그렇게 말했는지 곰곰이 생각해보았다. 크라이스트처치에서 200km 정도까지는 평범한 풍경인데, 자전거로는 이틀이 넘게 걸리는 코스이지만 차로는 비교적 금방 갈 수 있는 거리이다. 만약 내가 대전에서 부산으로 가는 차를 탔다고 가정했을 때, 대구에서 부산의 코스가 아름답다고 느꼈다면 밖에 나가서는 대전에서 부산으로 가는 코스가 아름다웠다고 말하고 다닐 수도 있다. 이게 그 이유이지 않을까.


가는 길에 인터넷이 끊긴다. 인터넷이 끊기고 신호가 잡히지 않으면 아이폰은 자동으로 위성통신으로 전환된다. 위급상황이 생기면 주변인들에게 인공위성을 통해서 문자를 보낼 수 있게된다.
그래도 아무리 오늘처럼 지루하고 별 다를게 없는 길일 지라도 자전거로 지나온 길은 나와 특별한 관계를 맺는다. 나는 일년 반동안 편도 50km가 되는 출퇴근 길을 다녔지만 그 사이에 있는 마을의 이름을 하나도 기억하지 못한다. 누군가가 말해준다면 ‘아 그랬었지’하고 기억은 날 수 있겠지만 그것은 내게 그저 모르는 영어단어나 프랑스어 단어를 듣는것과 마찬가지의 느낌이다.
그 마을과 나 사이에는 어떠한 관계성도 없었고 그냥 그저 지나가는 한낯 통로일 뿐이었다. 오히려 자전거 여행을 하면서 달콤한 아이스크림을 하나 사먹었던 마을이 나에게 더 큰 의미가 있다. 슈퍼의 점원이 친절했다든가 지나가는 할머니가 나에게 환하게 인사를 해줬다든가 하는 경험들은 내 마음 깊은 곳에 뿌리내린다.
과장을 보태자면 잠깐 지나간 땅이나 사람이 별로 살지 않는 마을이라할 지라도 나는 거기에 내 목숨을 빚졌다. 그곳 슈퍼에 들러서 양식을 사고 물을 마셨다. 적어도 나는 오롯이 내 물리적인 힘만으로 그 땅을 지나왔기에 그 땅으로부터 소외되지 않았다.
어찌저찌 캠핑장에 도착했다. 입구부터 캠핑하는 위치까지 거의 3~4km 정도 떨어져 있는 듯 하다. 도착하니 오후 3시 15분 정도. 이 시간부터 내일 아침까지는 강제 인터넷 디톡스다.
자전거 여행을 할 때 숙소문제가 가장 어려운 부분인 듯 하다. 돈 생각 안하고 한다면야 캠핑장, 에어비앤비, 호텔 가릴 거 없이 자면 되지만 일반 자전거 여행자들은 그렇게 럭셔리하게 다니지 않는다. 대체로 캠핑을 하게 되는데 캠핑장 사이의 거리가 관건이다. 어떤 곳은 100키로 이상 구간동안 캠핑장이 하나도 없는 구간이 있는데, 이런 곳에서는 와일드캠핑도 각오해야한다. 아직 나는 다행히 정식허가 캠핑 구역 이외 지역에서 캠핑을 해본 적이 없는데 많은 여행자들은 숲, 강, 들판 가릴거 없이 텐트를 친다. 와일드캠핑은 보통 해가 질 무렵에 사람들의 눈을 피해서 텐트를 치게되는데 지금 뉴질랜드는 밤 9시가 넘어서 해가지기 때문에 그게 쉽지만은 않다.
지금 시간에 캠핑장에 사람이 딱 한명 있었는데 텐트를 치고 있으니 내게로 다가와 인사를 건넨다. 한국에서 왔다고 하니 바로 ‘안녕하세요.’라고 인사한다. 이름은 John 지금은 이혼했지만 한국여자분과 결혼해서 블레넘 지역에서 스시집을 함께 운영했었단다. 헤어지고 나서는 무려 14년간 집 없이 캠퍼벤을 하나 끌고 캠핑만 하고 사는 자연인이 되었다. 핸드폰도 노트북도 없이 생활하고 계신단다. 유쾌하고 재밌는 분이다.





숲으로 둘러쌓인 곳에서 캠핑을 하려니 조금 무섭다. 낯선 풀들과 낯선 새, 곤충, 나무들. 내가 이름붙일 수 있고 정의내릴 수 있는 것들은 나에게 위험이 되지 않는다. 내가 아는 벌레와 내가 아는 새, 나무들은 무서울게 하나 없다. 미지의 것이 늘 두렵다. 내 옆을 날라다니는 작은 곤충이 그냥 날파리인지 물리면 무지하게 간지럽다는 샌드플라이인지도 알 길이 없다.
뉴질랜드를 흔히 청정구역이라고 하는데 나는 이 말을 들으면 무균실 같은 하얀 백색의 공간이 머릿속에 떠오른다. 하지만 실상 청정구역이란 말은 사람의 손이 닿지 않은 자연 그대로의 모습인데 이는 벌레, 곤충, 동물, 식물들이 많다는 뜻. 결벽증 환자가 바라는 그런 모습과는 거리가 멀다.
어쨌든 오늘은 여유가 있는데다 인터넷도 안되니 책도보고 글도쓰고 일찍 잤다. 새벽에 화장실을 가려고 5초 텐트를 열었는데 그 새 모기가 네마리나 들어왔다. 하나 하나 다 잡았다. 불을 켜서 확인해보니 플라이와 텐트사이에 엄청난 수의 모기가 날아다닌다. 어디 나를 물어뜯으려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