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Just give it a fuck!" - 수염 난 아저씨의 조언은 절대 믿지 말자

[뉴질랜드 자전거 여행] #12 2024.11.19-20 뉴질랜드 남섬 Picton에서 출발해서 바닷마을 카이오쿠라(Kaiokura)로 향한다.

"Just give it a fuck!" - 수염 난 아저씨의 조언은 절대 믿지 말자

2024.11.19 순풍이다!

오늘은 도착지를 정해놓지 못했다. 여기 Picton에서 동쪽 해안가를 따라가다가 최종 목적지까지 내륙으로 들어가는, 대강의 코스만 머릿속으로 그려놓았을 뿐 구체적인 계획은 하나도 세우지 못했다.

어차피 상세히 계획을 세워봐야 반드시 무너지게 되어있다. 갑자기 비가 온다거나 돌풍이 불기도 하고 예상치도 못한 곳에서 길이 끊어져 있기도 한다. 중간에 경치가 아름다우면 거기 들러서 쉬기도 하고 느긋하게 밥을 먹으면서 시간을 많이 허비하기도 한다.

남섬에는 원래 사람이 많이 살지 않는데 내가 가는 경로에는 더더욱 사람이 없는지 웜샤워 호스트가 하나도 없다. 그래서 중간에 있는 쉘터를 1차 목적지로 정하고 괜찮으면 그 곳에서 몰래 텐트를 치고 자야지 하고 마음 먹고 출발.

남섬 이틀차인 내가 느낀 남섬과 북섬의 가장 큰 차이점은, 남섬은 인터넷이 안되는 지역이 너무 많다는거다. 이동하는 중간 절반정도는 인터넷이 터지지 않고 그나마 조금 큰 도시 주변으로 가야지 신호가 잡히는 경우가 많다. 한국과 비교하면 와이파이든 데이터든 전부 다 말도 안되게 느려서 블로그를 올리는 것도 힘들다. 동영상이 하나라도 있으면 업로드하는데 10분~30분이 걸리니까. 인스타그램이나 다른 외국회사의 플랫폼과 비교해서 네이버는 너무 무겁다. 아무래도 인터넷 속도가 빠른 우리나라에서 쓰는 사이트라서 그 속도를 기준으로 만들어놓은 거 같은데 외국에서 쓰기는 상당히 버겁다.

가는 길 중간에 큰 마트를 들렀다. 라면과 빵 등을 사고 처음으로 파스타 면을 샀다. 원래 요리는 영 잼병이라 한국에서도 스스로 파스타를 만들어먹은 적이 한 번도 없다. 그런데 칼로리/가격으로 하면 소스를 같이 산다해도 파스타가 라면보다 싸다. 이거 안 살 이유가 없다. 소스를 뭘 사야할 지 몰라, 마트에 있는 할머니 두분께 물어보니 친절하게 설명해주셨다.

오늘 지나는 마을에는 포도밭이 정말 많았다. 이게 영어 단어로만 외우던 vineyard 구나라고 또 한번 깨닫는다. ‘Creek’이 얼마나 작은 규모의 냇가인지도. 여지껏 직접 경험의 중요성을 관과하며 살았다. 구글 스트릿뷰로 세계여행 다 할 수 있는데 뭐하러하냐고 한 시절도 있었고 책과 교과서에서 세상을 훨씬 더 자세히 배울 수 있다고 생각한 적도 있었다. 부끄러운 일이다.

열심히 달리는데 길이 막혀있다. Trail Closed. 바로 옆에 쓰레기장이 있길래 그 쪽으로 가니 어떤 아저씨가 막아선다. 흰 수염이 잔뜩 난 아저씨인데 희한하게도 이렇게 수염을 기른 사람들은 죄다 목소리가 똑같다. 길을 좀 알려달라니까 막혀있는 길로 가란다. Trail Closed 간판이 있다니까 “Just give it a fuck!”이란다. 한바탕 웃고 “Fuck!”이라 나도 외치고 막아놓은 그물 위로 자전거를 넘겼다.

아저씨를 믿지 말았어야했다. 좀 가니까 공사중이고 도로가 끊어져있다. 하는 수 없이 왔던 길을 돌아갔다. 이번 계기를 통해 깨달았다. 저렇게 생기고 저런 목소리를 가진 사람은 믿으면 안된다.

​오늘은 순풍이 부는 날이다. 사람들은 역풍을 순풍보다 훨씬 더 크게 느끼는 법이다. 웬만큼 순풍이 세지 않은 이상은 순풍을 느끼기도 힘들다. 마치 우리 인생처럼.

하지만 오늘은 달랐다. 꽤 강한 순풍이 부는데 오르막을 올라갈 때 마치 구름을 타고 가는 듯한 느낌이 들 정도다. 누가 나를 살포시 들어서 올라가주는 느낌. 짐이 많아 가로 폭이 커지니 면적이 늘어나 바람이 영향이 그냥 자전거보다 더 크다.​

이렇게 오늘 정한 도착지에 도착을 하니 아직 3시 30분 정도. 화장실도 있고 텐트를 칠 장소도 있는데 바람이 너무 강하게 분다. 공짜 좋아하다가 피보기 싫으니 25km 정도 떨어진 곳에 위치한 캠핑장으로 다시 출발.

힘들게 도착했다. 바다가 보이는 캠핑장이다. 저녁으로 파스타 잔뜩 끓여먹고 휴식.


2024.11.20 바닷마을 카이오쿠라

오늘 목적지는 Kaiokura라는 작은 마을이다. 마오리어로 “가재를 먹는다”라는 뜻이라는데 물개와 고래와 펭귄이 유명한 곳이다. 고래 관련된 투어가 인기라 뉴질랜드 여행을 오는 사람들이 많이 방문한다.

​아침에 일어나서 준비를 하고 있으니 누군가가 또 커피를 먹을거냐고 물어본다. 당연히 거절하지 않았다. 독일에서 온 부부인데 육아휴직을 두달간 내고 아이 두명과 함께 뉴질랜드로 캠퍼밴 여행을 왔다고 한다. 무급 육아휴직인데 지자체에 따라서 돈을 지원해주는 곳도 있단다.

독일인들은 여행을 참 사랑하는 듯하다. 여기서도 독일인 여행객들을 참 많이 만나게 되는데 독일인에 대한 편견이 많이 깨졌다. 1,2차 세계대전, 무뚝뚝함. 이런 편견들.​

내가 내년 3월에 지중해 루트를 따라서 유럽 여행을 할거라니까 지중해는 계속 보면 비슷비슷한 풍경만 이어질거라고 이탈리아에서 알프스를 넘어서 독일로 가보란다. 날씨가 춥지만 않다면 그것도 좋은 방법일 거 같다.​

오늘 가는 길은 아름다움의 연속이었다. 여기서 ‘와’, 저기서 ‘와’ 하다보니 도착한 쉘터. 물개가 보이는 곳에서 파스타를 끓여먹고 다시 출발했다. 그 쉘터가 물개 명당인 줄 알았는데 가는 길에 전부 물개 천지다. 물개 때문인지 다른 해조류 때문인지는 모르겠지만 비린내가 꽤나 고약했다.

​한참을 감탄하다보니 Kaiokura에 도착. 인구가 2,200명 정도 밖에 안되는 마을이라 역시나 작다. 정말이지 뉴질랜드는 대표적인 대도시 몇개를 제외하고는 전부다 작은 마을 뿐이다.​

자전거 여행을 하면서 알게 된 사실인데 나는 관광도시를 좋아하지 않는다. 캠핑장이 대체로 비싸기 때문이다. 이 마을 안에 있는 캠핑장은 대부분 캠퍼밴만 출입가능하고 그렇지 않은 곳은 비싸다. 여기서도 공짜로 잘 수 있는 곳을 한참 찾아다녔는데 나 처럼 생각한 사람이 많았는지 여기저기 “No Camping”이라는 표지판들이 보인다. 안 지키면 400NZD 벌금을 부과하겠다는 무시무시한 표지판까지.

캠핑장 가격을 떠나서 관광도시에 오면 묘하게 기분이 안좋다. 무언가를 해야한다는 압박감이 나를 짓누른다. ‘여기까지 왔는데 이것도 안해?’, ‘언제 또 여기 올 수 있을 줄 알고? 이건 하고 가야지?’라는 생각이 나를 공격하는데 이겨내기 위해선 꽤 강한 정신적 방어력이 필요하다. 내가 진짜 원하는 것과 사회적 압력에 의해 ‘원해야만 하는 것’을 구분 할 줄 아는 능력도 있어야 한다.

대체로 관광도시에서 진행하는 투어를 하고 진짜 만족한 적이 거의 없었다. 그래서 이번 여행을 올 때도 투어는 모두 생략하고 가자고 다짐을 하고왔건만, 관광도시에 들어서면 도시 자체에서 느껴지는 특유의 활달한 에너지가 내 다짐을 조금씩 좀먹는다. 그러다보면 기분이 쳐지고 우울해진다.

하여튼 이 도시에서 9키로 정도를 더 가면 17000원 정도에 쓸 수 있는 캠핑장이 있으니 그곳으로 향했다. 인터넷이 잘 안터지긴 하지만 그래도 이게 어디냐.​

아까 사온 고기를 굽고, 라면을 끓이고 밥까지 말아먹었다. 하루에 이정도로 자전거를 타면 몇 칼로리 정도가 적정칼로리인지 계산해보니 4,000칼로리를 먹어야 한단다. 그 덕분에 절제 없이 아이스크림이든 과자든 마구 입으로 때려넣는다. 죄책감 없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