채식주의자 독일인 Caro와의 캠핑
[뉴질랜드 자전거 여행] #11 2024.11.17-18 두번째 웜샤워 페리타고 뉴질랜드 북섬 웰링턴(Wellington) → 남섬 픽턴(Picton)으로 가다
2024.11.17
아침에 일어나 텐트를 철수하고 있으니 멀리서 한 아저씨가 "Coffee?"라고 외친다. 버스 같은 캠퍼벤을 타고 여행하는 부부인데 "Sure!"라고 외치고 다가가니 커피와 비스킷, 에너지바를 챙겨주셨다. 자전거로 여행하면 행색이 초라해지지 않을 수가 없어서 주변 사람들의 도움과 선행을 많이 받게 되는 듯하다. 어쩌면 내가 유난히 초라해 보일지도 모르겠다.
인간은 악하고 세상에 나쁜 사람이 아무리 많다 한들, 대부분의 사람은 자기 눈앞에서 어려움을 겪고 있는 사람을 보면 그냥 지나치지 않는다. 제아무리 흉악한 범죄를 저지른 사람이든 눈앞에서 불구덩이로 기어들어가는 아기를 막지 않을 자는 없다.
자전거 여행자는 확실히 강자라기보다는 약자 쪽에 가까워서 언더독 효과의 큰 수혜자가 아닌가 생각한다.
아침 9시다. "It's time to hit the road."라고 부부에게 작별 인사를 한다. "배는 항구에 있을 때 가장 안전하다. 하지만 그것이 배가 존재하는 이유는 아니다". 어쨌든 여행자는 계속 나아간다.


오늘은 뉴질랜드의 수도이자 북섬에서 남섬으로의 페리를 탈 수 있는 장소, 항구도시 Wellington에 사는 노부부에게 웜샤워 초대를 받았다. 이 부부 역시 자전거로 세계 곳곳을 많이 여행하신 분들이다. 정말이지 말도 안 될 정도로 친절하다. 집으로 오는 경로를 세세하게 알려주고 저녁까지 준비해 주신다고 미리 말씀해 주신다. 힘들면 차로 픽업하러 오신다고 하셨는데, 최선을 다해서 가겠다고 대답했다.

옆에 갓길이 아무리 잘돼있어도 하이웨이로 들어가 쌩쌩 달리는 처 옆을 달리면 무섭고 마음이 조급해진다. 하지만 도보나 자전거 길에선 마음도 여유롭고 주변의 풍경을 즐기면서 달릴 수 있다. 뉴질랜드에서는 자전거를 타는 사람들끼리 웃으면서 "Good morning!"이나 "Hello"같은 인사말을 건네며 서로를 스쳐 지나간다. 새삼 "모두에게는 자기만의 속도가 있다."라는 진부한 말을 상기하게 된다. 사실이 그렇다. 누군가는 걸어서 여행을 하고 누군가는 차를 타고 여행한다. 자전거를 타는 사람도 있고 심지어 리어카를 끌고 4개 대륙을 종단한 여행자도 있다. 세상을 살면서 마음이 자꾸 조급해지고 무언가에 쫓기는 거 같다면 하이웨이를 벗어나 자전거길로 가보자.

오늘은 바닷가 길을 많이 따라갔다. 바닷가 마을에선 내륙 마을에서 느낄 수 없는 특유의 활기가 느껴진다. 날아다니는 갈매기와 물에 비치는 햇빛이 이런 분위기를 자아내는 것일까. 덩달아 내 기분도 들뜬다.
가는 길에 한 마오리족 아저씨를 만났다. 길이 복잡하니 자기만 믿고 따라오란다. 따라가기 좀 버거웠지만 덕분에 복잡한 길을 안전하게 갈 수 있었다. 화요일 Wellington에서 1만 명이 모여서 시위행진을 한다며 나보고도 참여를 하라 하신다. 마오리족과 정부 사이에 맺은 어떤 조약에 관한 건데 행진이 어떨지 꽤나 궁금하다. 뉴질랜드 인구가 500만 명이 안 되니 1만 명이면 정말 많은 사람이 참여하는 거다. 지나가는 길에 만나는 깃발을 든 시위 참여자들의 모습은 마치 축제를 연상시킨다. 미리 페리를 예약하지 않았다면 나도 참여했을지도 모르겠다.
중세 카니발 기간에는 거지와 왕의 역할이 바뀌기도 하고, 금기시되던 행동이 허용되었다고 한다. 시위 역시 이와 유사한 성격을 갖는다.



며칠 뒤 유튜브를 보니 뉴스에서 꽤나 진지하게 다루었더라. 슈카월드에도 나왔다.
5시쯤 도착한다고 호스트 분께 말했었는데 생각보다 시간이 늦어 6시가 거의 다 돼서야 도착을 했다. 큰 창이 있는 구조의 아늑한 집. 노부부는 나를 환히 맞이해주신다. 많은 여행자들을 초대했었는데 한번은 영어를 하나도 못하는 한국인을 맞이한 적이 있었다고 한다. 소통이 하나도 안되니 서로 서로 어색한 그런 기이한 경험을 한 적도 있다고.
오늘 저녁은 할아버지가 요리해 주셨다. 양 어깻 살의 다양한 야채와 치즈를 곁들인 요리다. 크리스마스나 일요일에 먹는 특별한 음식이라고 한다. 고기를 좀 더 주셨으면 더 좋았을 뻔했다.
이 주 만에 처음으로 세탁기로 세탁기로 세탁도 한다. 세탁은 샤워할 때 한 번씩 했었는데 대부분의 날은 세탁을 못하고 전날 입었던 찝찝한 옷을 그대로 입고 다녔다.







2024.11.18
오늘은 드디어 대망의 남섬으로 넘어가는 페리를 타는 날이다. 웜샤워 호스트 할머니가 차려주신 계란 볶음밥과 커피를 먹고 출발한다. 페리는 1시 반 출발이라 12시 반까지 체크인을 마쳐야 한다.
Bluebridge 페리가 가격도 싸고 자전거 추가요금도 없다고 해서 여기로 예약했다. 대기실은 쾌적한데다가 와이파이까지 잘 터져서 여기서 노트북을 열고 밀린 블로그를 썼다.
충전을 하려고 보니, 말 그대로 아뿔싸. 충전기 어댑터(뉴질랜드용)를 호스트 집에 놓고 왔다. 아직 체크인까지 한 시간 정도 남았기에 빨리 갔다 오려고(100미터가 넘는 고개를 올라가야 한다.) 왓츠앱으로 연락을 드렸다.
정말 죄송하지만 감사하게도 직접 오신다고 하셨다. 자전거를 타고 갖다주시겠다고. 민폐도 이런 민폐가 없다. 밥도 얻어먹고 잠도 얻어자고, 마지막까지 이런 신세를 진다. 30분 정도를 어쩔 줄 몰라 하며 기다리니 할아버지께서 어댑터를 들고 오셨다. 바람 빠진 자전거펌프질까지 해서 오셨단다. 마지막 인사를 한 번 더 나누고 헤어진다.


내가 영어 실력이 미천한 탓인지 문화적 차이인지는 모르겠지만 영어로는 고마울 때 느끼는 그 어쩔 줄 모르는 미안함을 표현하기가 힘들다. 상대방이 뭔가를 자꾸 베풀고 주려고 할 때 나오는 그 제스처와 말투를 영어로는 표현하면 뭔가 어색해진다. 그래서 ‘감사하다’라는 표현을 연달아서 많이 하는데 마음 한편으로는 내심 이 감정을 전달하지 못해 아쉽다.
드디어 페리를 탄다. 자전거를 끌고 가서 자전거 거치대에 끈으로 흔들리지 않게 꽉 죄어 맸다. 바로 뒤에 따라온 여성분도 MTB 자전거에 큰 짐들을 잔뜩 실은 모양을 보니 나처럼 자전거로 여행을 하는 모양이다. 남섬으로 가면서 그분과 많은 이야기를 나눴다.
이름은 Caro, 독일인, 나이는 26살, 관광을 전공했고 잠깐 일을 하다가 그만두고 워킹홀리데이 비자를 받아서 뉴질랜드로 왔다고 한다. 뉴질랜드에서 어떤 일을 할지, 어디서 일을 할지 아직 결정하지 못해서 자전거로 오랫동안 여러 도시를 둘러보면서 천천히 결정할 거라는데 북섬에서 벌써 두 달 정도 여행을 했다고 한다.

바이바이 북섬
얘기도 하고 밥도 먹고 바깥 구경도 하다 보니 어느새 남섬 Picton 도시에 도착. 이 친구는 서해안 쪽에 산지를 따라가는 루트고 나는 동해안가를 따라가다가 내륙으로 들어가는 루트이다. 그래서 Picton에서 가는 방향이 반대가 될 수밖에 없다. 그런데 페리에서 내리니 벌써 시간이 4시 반이 넘었기에 둘 다 이 도시에서 하루 묵고 가는 게 좋은 선택이다.
도시는 시골보다 캠핑장 비용이 비싸다. 나는 보통 캠핑장 20NZD(17,000원 정도) 되는 곳만 찾아다니는데 여기는 기본이 40~50NZD. 그래서 어제 구글 지도를 보면서 몰래 캠핑할 장소를 물색했는데, 그 공원부터 같이 가보기로 한다. 근데 너무 시내 한가운데 있어서 눈에 띈다. 게다가 몰래 하는 스텔스캠핑은 일반적으로 해가 지면 텐트를 치고 해가 뜰 때쯤 밖으로 빠져나가야 하는 터라 해가지기까지 4시간을 기다려야 한다. 여기는 아니다 싶어 구글 지도에 초록색으로 나오는 지역을 여러 군데 뒤졌다.
첫째로 교회를 가니 여기는 holy ground라서 안된다고 하고 개 산책시키는 공터로 가니 너무 경사가 져서 텐트를 치고 자기에 불편해 보인다. 결국에 45NZD 하는 주변 캠핑장에 전화해 본다. 두 명이 텐트 친다고 하니까 그냥 둘이 합쳐서 45NZD에 해준다고 한다. 더치페이 하기로 하고 캠핑장에 도착.



텐트를 치고 주방으로 가서 밥을 해먹었다. 내 메뉴는 라면과 과자, 그리고 첫 번째 웜샤워 호스트 분께 받은 시금치 카레(라이스가 없었다. 뜯기 전까지 몰랐다.)와 계란. 이 친구는 토마토소스와 무언가를 뿌린 파스타 비슷한 음식이다. 몇 가지 재료를 공유해서 나눠먹었다. 참고로 이 독일인 여자는 계란과 생선은 먹는 좀 낮은 단계의 채식주의자이다.
독일에선 어디 살았다, 한국은 4대강 자전거 길이 잘돼있어서 자전거 여행하기 쉬울 거다 와 같은 얘기부터 시작해서 예전에 우리나라 간호사와 광부가 독일로 일을 하러 갔었다 와 같은 이야기까지 이어진다.(이 부분에 대해서 아는게 하나도 없었다.) 그분들이 본인 돈을 벌러 간 것이 아니라 정부 돈을 벌러 갔다니까 놀란다. 그 후로 민주화 운동을 거쳐서 대한민국이 이래저래 됐다는 이야기까지 했다.
식사를 마치고 간단한 세안을 마친 후 각자의 텐트로 들어갔다. 이 친구는 밤에 이북 리더기로 항상 책을 읽다가 잔다고 했다. 스스로가 부끄러워지는 밤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