낯선 길 위에서 고향을 만나다: 태국 시골 교회의 따뜻한 안식

[동남아 자전거 여행] #31 태국 2025.01.31 - 02.02 태국 이싼의 뙤약볕 아래, 134km를 달려 도착한 작은 교회에서 예상치 못한 환대. 낯선 땅에서 마주한 15년 전 나의 추억, 그리고 안장을 내려놓고 잠시 가족이 되어준 사람들의 따뜻한 기록

낯선 길 위에서 고향을 만나다: 태국 시골 교회의 따뜻한 안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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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5.01.31

오늘 웜샤워 호스트 집까지 134km를 가야한다. 아침에 서둘러서 준비를 하고 나와서 안장에 올랐다. 130km대 라이딩을 이제껏 두 번 정도 한적이 있어서 그렇게 긴장은 하지 않았다. 처음부터 끝까지 평지니 아마 4시 조금 넘어서 도착할 수 있을거다.

태국은 남한 국토면적의 약 5배. 내가 현재 라이딩하고 있는 곳은 이싼지방이라는 태국에서도 가장 큰 지역이다. 어제까지의 라이딩에서는 크게 느끼지 못했는데 오늘 라이딩에서는 이곳이 마치 사막같다는 인상을 받았다. 넓은 평야가 계속해서 이어지는데 도로를 제외하고는 전부 논과 밭이다. 현재 내가 가는 방향은 남쪽, 그늘 한점 없는 드넓은 평야에 달궈진 도로로 달리니 무지하게 덥다. 이와 비견될 만한 장소가 우리나라에 있을까?

길을 가다가 작은 길거리 카페에 들렀다. 이싼 지방에는 큰 도시 몇몇개를 제외하면 여행자들이 많이 없는지 일하는 사람들이 나를 많이 반겨준다. 가다 마시라며 물도 줬다. 태국 지방 곳곳에는 한국어를 조금씩 할 줄 아는 사람들을 만날 수 있는데 이유를 들어보니, 고등학교 때 제 2외국어로 한국어를 선택해서 배울 수 있다고 한다. 이 카페에서 가장 인상깊었던 점. 트렌스젠더 여자(?) 한명이 그 가게에 같이 있었는데, 아무런 이질감 없이 그곳에 함께 동화되어 어울려 살아가고 있었다.

호스트 아주머니는 50대였고 간호사로 일을하다가 현재 그만뒀다고 한다. 오후 4시경에 전 직장 동료들이 함께 모여 밥을 먹는다고 하는데 시간이 된다면 나를 마중나와서 함께 자전거를 타고 집으로 가자고 하셨다. 최대한 빨리 도착하기 위해서 열심히 달렸다. 온도는 35도. 너무 더워서 물도 많이 마시고 음료수도 몇 번이나 사먹었다. 갈증이 쉽사리 없어지지는 않는다.

7키로 정도 남았나, 어떤 사람이 반대편 차선에서 나에게 크게 손짓을 한다. 호스트 아주머니가 고맙게도 직접 마중나오셨다. 집에 도착하고 내가 잘 공간을 안내해주신다. 집에 넓은 마당과 큰 정원도 있고 차고 같은 곳도 여러개 있었다. 내가 묵을 공간은 분리된 작은 건물이다.

손님들이 어림잡아 10분은 와계신다. 내 또래부터 50대 까지 다양한 연령대가 있는 것 같았다. (아직 태국인들의 나이를 유추하는게 어렵다). 나보다 4살 어린 딸(이라고 부르지만 사실 조카)가 함께 사는데 여기서 큰 정원을 가꾸고 빵도 만드는 일을 한다.

저녁을 먹고 손님들을 다 보낸 후에 차로 함께 드라이브를 하며 시내 구경을 잠깐하고 들어왔다.


2025.02.01

어제 밤, 같이 근처 구경도 하고 카페도 가면 좋을거 같다며 호스트 가족들이 여기 하루 더 머무르지 않겠냐고 제안을 해주셨다. 2월 중순까지 베트남 호치민으로 가면 되기에 크게 부담은 없는 제안이어서 자기 전에 그러겠다고 말씀드렸다.

이 집에는 엄마, 아빠, 첫째 딸(사실 조카, 이름은 무), 둘째 딸(진짜, 카페에서 일한다), 첫째 딸 남자친구, 엄마의 어머니가 함께 산다. 사실 첫째 딸 남자친구는 잠은 다른 곳에서 자는 것 같았다.(하지만 밥은 항상 같이 먹는다.) 한국인으로서 약간은 의아한 대가족이긴 한데, 이 점만 빼고 본다면 우리나라의 대가족 분위기와 흡사하다. 참고로 이 가족의 가장 특징적인 점은 가족 전체가 교회에 다닌다. 태국의 기독교 인구는 전체 인구의 1% 정도 된다.

아주머니는 자전거에 아주 열정적인 분이다. 혼자서 영국, 유럽, 터키, 스리랑카 등 많은 나라를 자전거로 여행했다. 집 크기로 보나, 가진 자동차 대수로 보나 이 집은 다른 태국 일반 가정보다는 유복한 집인 듯 하다.

둘 째 딸이 일하는 카페에서 커피를 먹고 근처 사원을 구경했다. 사람들이 버린 빈 병으로 만든 특이한 사원이다. 여기가 캄보디아 국경과 가까운 곳이라 근처에서 크메르 제국 유적들도 쉽게 찾아볼 수 있었다.

점심에 집에가니 첫째 딸 ‘무’의 남자친구가 와있어서 함께 점심을 먹으며 대화를 나눴다. 교회를 꽤나 열심히 다니고 찬양단 밴드 일원이다. 놀라웠던 건 우리나라 찬양 “예수 사랑합니다”가 좋아서 직접 번역도 하고 녹음도 했다. 태국인들이 듣고 부르는 찬양이 우리나라 찬양의 분위기와 거의 비슷하다.

저녁 즈음 같이 교회에 놀러갔다. 교단은 pentecostalism, 오순절파. 우리나라 에는 수 많은 교단들이 있지만 막상 문을 열어보면 전부 오순절교단이라는 말이 있다. 그래서인지 내가 어릴 때 우리 교회의 모습과 거의 똑같아보인다. 정말로 우리 나라 교회의 모습을 그대로 이식해 놓은거 같다. 우리나라 교회의 딱 15년 정도 전의 모습을 보는 것 같다. 어쩌다보니 찬양팀 연습을 같이 했는데, 내일 예배시간에 어쿠스틱 기타를 치게되었다. 심지어 ‘예수 사랑합니다’ 특송도 하기로 약속해버렸다.

이 가족 덕에 신기한 경험을 많이하고 친구도 많이 사귀었다. 내일 교회에 같이 갔다가 점심을 먹고 떠나기로 했다.


2025.02.02

예배시간은 10시 30분, 아침에 자전거 짐을 싸고 교회로 갔다. 아이들이 많고 분주한 분위기가 마치 내 기억 속 어린 시절, 어느 여름날의 일요일을 떠올리게 한다. 내리쬐는 뙤약볕, 아이들 떠드는 소리, 시원한 에어컨 바람, 한바탕 웃음 소리, 축구공, 음악.

아, 특이할 만한 사실. 이 교회의 규모는 50~100명 남짓한 규모. 하지만 세션 실력은 1,000명 이상 규모의 큰 교회와 맞먹는다. 같이 연습도 많이하고 콘서트도 몇 번 열었고 대회도 여러번 나가서 수상했다고 한다.

이 교회 사람들의 환대와 관심은 일찍이 내가 한국에서는 한 번도 받아 본 적이 없는 종류의 것이다. 그도 그럴것이 내가 받은 환대는 작고 열정적인 교회 특유 에너지, 외국인에 대한 호기심, 한국인에 대한 호감, 이 세가지 모든 것이 합쳐진 형태의 것이라 그런 것일테다. (뉴질랜드 로컬 교회에서는 저 세가지 중 앞의 두가지를 합친 정도의 환대를 받았었다.) 심지어 여기선 교인들이 다 같이 나의 안전한 여행을 위해서 기도도 해주었다.

[뉴질랜드 자전거 여행] #05 | “Hey Kim” 밥 먹고 가요: 시골 작은 교회의 환대
[뉴질랜드 자전거 여행] #05 2024.11.09-10

점심을 먹는데 이따 축구를 같이 하자고 하루 더 자고 가란다. 저녁에는 생선 요리도 해주시겠다며. 어쩔 수 없이 그러겠다고 하니 만세까지 부르며 좋아해주었다. 내가 살면서 이 정도로 환영 받을 수 있는 일이 다시 있을까.

점심을 먹고는 교회 목사님이 운영하는 작은 농장 구경도 하면서 얘기를 나눴다. 고무나무에서 고무도 채취하고 소도 몇마리 키우시면서 버는 돈으로 가난한 아이들 교육비를 지원하신다고 한다. 태국은 그래도 중진국으로서 꽤나 잘 사는 줄 알았는데 시골에는 굶는 아이들도 꽤 많단다. 한달에 2,000바트~3,000바트(10만원 정도)면 한명의 아이들의 생활비와 교육비를 충당할 수 있다는데 이런 얘기를 들을 때마다 참 생각이 많아진다.

오후 5시 무렵에는 교회 사람들과 축구를 했다. 뭔가 이상했던 건, 축구를 하는데도 사람들이 차분하고 흥분하지 않는다. 승부욕도 별로 느껴지지 않고 공격적인 사람도 한 명 보이지 않았다. 축구가 끝나고 내가 느낀 점에 대해서 ‘무’ 남자친구에게 말하니, 교회에서 그냥 재밌고 가볍게 차는거라서 그렇다고 한다. 자기들도 축구를 열심히 하는 사람들은 승부욕도 강하고 몸싸움도 격렬하다고 했다.

아무리 그 사실을 감안한다고 하더라도, 한국인으로서 나는 이 축구가 이상하리만치 부드럽게 느껴졌다고 해야하나. 사실 한국에서 15명 가까이 되는 인원이 함께 축구를 하면, 아무리 교회에서 가벼운 마음으로 게임을 한다한들 개중에 한 두명은 흥분하는 사람이 나오기 마련이다. 목사님들도 축구를 하면 십원짜리 욕을 내뱉는 경우도 허다한데 말이다. 전에 태국 생활을 알려주는 유튜버가 자기는 십년을 넘게 태국에서 살면서 태국 사람이 화내는 모습을 거의 본 적이 없다고 했다.

태국에는 끄렝짜이(kreng jai)와 짜이옌(jai yen)이란 개념이 있다. 끄렝짜이는 상대를 불편하게 하지 않으려는 조심스러움을 뜻하고 짜이옌은 감정을 겉으로 세게 드러내지 않는 차분함을 뜻한다. 우리나라의 '정'이 불과 같아면 태국인들의 심성은 '물'과 비슷하다고 느꼈다. 서로 대립각을 세우지 않고 유들유들하게 넘어가는 경향이 있다. 이런 성향은 분명한 장단이 있다. 누군가는 이런 모습에 굉장한 답답함을 느낄테고, 자기 발전, 좀 더 거시적으로는 경제 발전의 발목을 잡는 성향일지도 모른다.

며칠 간 푹 쉬고 잘 놀았으니 내일부터는 다시 라이딩 시작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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