무정부 상태의 도로 위에서 마주한 신선계: 라오스 북부 고원의 경이로움

[동남아 자전거 여행] #21 라오스 2025.01.09 루앙프라방에서 방비앵 가는 길. 라오스에서 가장 높은 도로, 해발 1,900m 카시 산 고개(Kasi Mountain Pass) 넘기.

무정부 상태의 도로 위에서 마주한 신선계: 라오스 북부 고원의 경이로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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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5.01.09

어제 밤에 앞서간 한국 여행자분께 다음과 같은 연락이 왔었다. 그 연락을 받자마자 밤 늦게 슈퍼로 달려가 과자와 물을 잔뜩 샀다. 오늘 넘어야 하는 고개는 고도 1900m. 한라산 정상의 고도와 비슷하다. 한라산 등산 코스 중 가장 힘들다는 관음사코스는 해발고도 약 550m 에서 출발해 1930m 고도까지 올라가고 획득고도는 약 1400m. 오늘 올라간 곳은 이 마을은 해발 300m 정도 되는 곳이라 코뭇 지도에 따르면 오늘 획득고도는 1800m 가까이 된다. 사실 도로 포장율이 좋고, 10% 이하의 경사도가 계속된다면 힘들지만 자전거를 타고 올라갈 순 있다. 일전에 치앙마이에서 도이뿌이 캠핑장으로 갈 때도 1300m 정도의 고도를 올라가는데 경사도가 완만해서 힘들긴 했지만 끌바를 거의 하지 않고 올라갔었다. 하지만 이곳의 경사도 때문에 가끔씩 있는 낮은 경사구간을 제외하고는 35kg 정도 되는 자전거를 끌고 올라갔다.

이 곳의 경사도는 말이 안되는 수준이다. 트럭이 올라오긴 하는데, 사실 정상적인 국가라면 이 정도 경사에는 트럭을 통제해야하는게 맞다. 치앙마이로 가는 길에 넘었던 산이 이 정도 경사였는데 입구에서 무거운 차량은 못 올라가게 군인들이 막고 있었다. 하지만 라오스를 며칠 겪어보니 이 나라는 정부가 제대로 기능하고 있지 않는 것 같다. 무정부상태인데 관습과 종교가 국민들의 행동을 통제하고 있는 느낌이랄까.

어찌됐든 큰 마음을 먹고 달렸다. 무지막지한 오르막이 끝도 없이 이어진다. 산 중턱에서 650원을 주고 바나나 반송이(8개)도 사서 죄다 먹어치웠다. 그래도 어제 경고해주신 분 덕분에 아침 7시 반에 출발해서 그런지 정상에 한시 전에 도착했다. 이 코스는 자전거를 타든 오토바이를 타든, 차를 타든 라오스 여행을 한다면 꼭 지나치라고 말해주고 싶다. 정상 즈음에 고원 구간이 있는데 이 곳에 올라오면 신선이 살 것만 같은 기이한 느낌을 받을 수 있다. 방비엥 주변 카르스트 지형의 특이한 모양의 산 모양에 라오스 특유의 뿌연 공기가 합쳐지니 몽유도원도를 방불케했다. 이 곳을 보니 훼이싸이에서 루앙프라방으로 육로를 타고 갈걸이라는 후회도 됐다.

올라가는 중에 오토바이를 많이 만났는데 오토바이와 내 자전거를 끈으로 묶고 달리고 싶다는 욕망이 치밀었다. 나중에 한번 시도해보고싶긴 하다. 꼭대기에서 음료를 한잔하고 사진을 찍고 내리막을 내려갔다. 오르막 구간의 거개가 포장구간인데 반해 내리막길은 체감상 80%가 비포장 구간이었다. 포장율이 높고 도로가 넓으면 자전거를 브레이크를 거의 잡지 않고 시속 60km에 가까운 속도로 달려도 별로 위험하지 않다. 하지만 이러한 그래블도로에 트럭이 많은 구간에서는 풀브레이크를 잡아도 미끌어진다. 그래서 이런 구간에서는 브레이크를 잡느라 손아귀 힘이 풀려 중간 중간에 쉬어줘야 한다.

​내리막을 내려와 Kasi라는 마을어귀에 있는, 어제 독일인 친구가 추천해준 게스트하우스에 자리를 잡았다. 추천할만할 정도로 가격도 합리적이고 깨끗하다. 다만 한가지 아쉬운 점은 근처에 식당이 없었다는 점인데 거기 관리하시는 아주머니에게 밥 먹을 곳이 없냐고 하니 자기가 해주겠다고 했다. 계란 말이와 밥을 주시는데 계란 말이 맛이 우리 엄마가 해주는 것과 똑같았다. 태국, 라오스는 음식을 항상 매콤하게 하는데 우리엄마도 그렇다. 이런 사소한 친절이 여행자들을 감동케한다.

(여담이지만 내일 방비엥에서 만난 한국 여행자도 여기 숙소에 머물렀다는데 본인에게는 밥을 해주지 않아서 비상용 라면을 끓여먹었다고 한다.)

가는 길에 갑자기 차가 후진해서 오길래, 한국인이다. 수염에 묻은 건 선크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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