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혹과 욕망의 도시 방콕에서 나는 아타락시아(Ataraxia)를 찾을 수 있을까.

[동남아 자전거 여행] #03 방콕 2024.12.13 자전거와 함께하는 방콕 템플 투어. 그 사이에 경험한 방콕이란 도시에 대한 소회

미혹과 욕망의 도시 방콕에서 나는 아타락시아(Ataraxia)를 찾을 수 있을까.

2024.12.13

방콕에서 며칠 지내기로 마음을 먹었지만 막상 있어보니 할 것이 딱히 없다. 배낭여행자들의 성지라는 이름이 붙은 카오산로드, 유명한 관광지나 축제 장소 같은 데를 가봤자 나 혼자 거기 가서 크게 재밌을 거 같지도 않았다. 원체 시끌벅적하고 북적거리는 곳이나 축제 같은 것을 그닥 즐기지 못하는 성격이어서 방콕이라는 도시가 나와는 별로 맞지 않는다는 것을 오늘부터 조금씩 느끼고 있다.

아침에 로비에 앉아있는데 어제 그 미국인 친구가 세븐일레븐 커피가 품질도 좋고 가격도 싸다고 같이 가서 사오자고 한다. 거절할 이유가 없다. 혼자 여행하면서 세운 철칙 하나. 누가 무언가를 같이 하자고 하면 웬만해선 거절하지 않는다. 그 사람과의 대화나 새로운 경험으로 인해서 새로운 가능성과 즐거움이 생겨나기 때문이다. 원래 계획을 세워놓고 하는 여행이 아니라서 나는 현재 무한한 가능성에 내 자신을 던져놓고 있다. 하이데거가 말했던가, 인간은 내던져진 존재라고.

어제 호스트 친구들이 싼 값에 품질 좋은 옷을 살 수 있다고 추천한 Bic C Extra Rama IV 쇼핑몰에 가서 위아래 반팔을 샀다. 아디다스 짝퉁 옷을 위아래 합쳐서 2만원 정도 주고 구매했다. 멀지 않은 거리라 금방 돌아왔는데 미국인 친구 아리엘이 아직 로비에 있다. 뭐 어디 갈 곳 없냐고 물으니 주변에 있는 야시장들을 하나 하나 소개시켜준다. 여기는 뭐가 어떻고 거기는 뭐가 어떻고 하며.

바로 앞에 작은 시장이 하나 있는데 거기에 아리엘과 같이 간식을 사먹으러 갔다. 와플 하나가 한국돈 5천원이다. 심지어 양은 더 적다. 그래도 먹고 싶은 유혹을 이기지 못하고 하나 사먹었다. 여기 숙소 근처에 길거리 음식과 로컬 식당들을 몇 군데 먹어보면서 깨달은 사실은 그저께 잤던 공항 근처의 숙소 물가보다 여기가 두배 정도 비싸다. 배부름의 여부로 음식 물가를 계산한다면 방콕은 한국 중소도시 물가와 맞먹는다. 국수(나는 음식 이름을 죽었다 깨어나도 못 외운다.)나 밥 한 그릇에 80-90바트(3500-4000원)가량 되는데 국밥 특대 사이즈 포만감에 비비려면 2.5 그릇을 먹어야 되니까 얼추 우리나라 물가와 비슷하다고 보면된다.

길거리 음식은 어떤가. 작은 꼬지 하나에 500원 정도 하는데 이걸로 배를 채우려면10개 이상을 먹어야 한다. 여기에 음료수나 과일을 더 사먹으면 만원이 훌쩍 넘어간다. 놀라운 사실은 밥 값으로 뉴질랜드보다 돈을 더 많이 쓰고 있다. 이 사실이 나는 너무 열받는다. 뉴질랜드에서는 돈을 쓰지 않고도 누릴 수 있던 자연이라는 공공재가 있었는데 여기선 돈을 쓰지 않고 할 수 있는 것이 아무것도 없다.

10년 전 쯤인가 명동이 한창 인기가 있을 때 외국인들을 대상으로 꼬치 하나를 5천원-만원 정도를 받고 파는 것을 보았다. 그 때 내 머릿속 꼬지 물가는 천원~2천원, 나는 그 때 그것을 돈 주고 사먹는 중국인들의 뇌 한구석이 고장났다고 생각했다. 아마 현지인들이 우리가 방콕에서 길거리 음식을 사먹는 것을 보면 똑같이 생각하지 않을까.

와플을 먹고 나니 오후 1시 쯤 되었나, komoot 어플을 살펴보았다. komoot은 이전에 다른 사람이 직접 해보고 추천하는, 내 근처에 있는 자전거루트나 산책루트를 추천해주는 기능을 가지고 있는데 이 경로를 따라가면 재미있는 도시 탐방을 할 수 있다. 여기 방콕에도 추천 경로가 많이 뜨는데, 이 중에 temple tour가 재밌어보였다. 총 45km 정도 된다고 하니 해지기 전에 집에 돌아오겠구나 생각하고는 자전거 안장에 올랐다.(아아, 이 때는 내가 너무 순진했다.)

시작부터 장난이 아니다. 이 도시는 super cycling unfriendly city다. super walking unfriendly city이기도 하고(며칠 후 한 독일인으로 부터 직접 들은 말이다.). 사람은 무진장 많고 도로에 차, 오토바이는 질서없이 달려댄다. komoot 경로를 따라가기도 쉽지 않은게, 그 경로를 따라가려면 사거리에서 차량이나 오토바이처럼 우회전 신호를 받고 가야 되는 경우가 많았는데(태국은 좌측통행 나라이다.) 그게 무서워 횡단보도를 찾으니 없는 경우가 많다. 거짓말 안하고 수십번을 넘게 자전거를 들고 육교를 건너다녔다.

오늘 투어할 사원은 총 19개. 초반에는 들어가서 사진도 찍고 앞에 있는 음료수도 사먹고 느긋하게 투어를 했다. 그런데 어느 순간 내가 자전거를 탄 거리를 보니 10km 가 좀 넘은게 아닌가? 30km를 더 달려야 한다는 말이다. 해는 몇시간 후에 질 예정이니 느긋하게 자전거를 타서는 안된다.

komoot 루트는 재밌는게 큰 도로보다는 차가 다니지 않는 작은 도로 구석구석으로 나를 안내한다. 나는 이 이유 때문에 구글지도보다 이 어플을 더 선호한다. 그래서 방콕의 진짜 로컬들이 사는 모습을 많이 볼 수 있었다. 내가 아주 어릴 때 우리동네 같이 정겨운 그 느낌.

태국의 많은 집들은 수로나 운하(Khlong)를 끼고 물 바로 옆에 집들이 있는 경우가 많다. 다양한 역사, 경제, 문화적 요인이 있다고 하는데 그 이유는 차차 알아보기로 하자.

자전거로 태국 곳곳을 누비니 방콕의 명과 암이 훤히 보인다. 방콕의 대표적 대로인, 수쿰윗대로 옆으로는 높은 빌딩과 번화가들, 각종 쇼핑몰들이 자리 잡은 반면 골목 골목으로 들어가면 우리나라 판자촌과 같은 풍경들을 볼 수 있다.


​결국 마지막 19번째 사원을 다 보고나니 해가 떨어졌다. 아직 10km를 더 가야되는데 퇴근 시간이라서 도로가 무지막지하게 막힌다. 방콕이 아무리 오토바이가 무아지경으로 운전을 해도 우리나라처럼 인도로 올라오지는 않는다. 사실 이건 시민의식의 문제가 아니라 시스템의 문제인데, 인도 곳곳에 오토바이가 지나가지 못하도록 철 봉을 설치해 놓았다.

하지만 자전거는 여기저기 다 다녀도 문제가 없다. 빨간 불에 정차해있거나 천천히 가는 차 사이로 자전거를 타고 지나다녔다. 우리나라에서는 미친 자라니 소리를 듣기 딱 좋은 행위인데 여기서는 그 방법이 아니면 자전거를 탈 수가 없다. 그 누구도 내 자전거 타는 방식에 대해 신경도 쓰지 않는 눈치이다.

오토바이 형님들과 합세해서 자전거를 타기도 한다. 어떤 곳에는 분명히 자전거 도로라고 명시 돼있는데 오토바이만 수백대 달리고 자전거는 나 혼자인 경우도 있었다. 방콕의 다른 부분을 아직 모르지만 교통만 놓고 본다면 흡사 무정부상태라고 할 수 있다.

토머스 홉스는 사회를 “만인의 만인에 대한 투쟁”으로 보았고 루소는 인간은 본래 선하고 도덕적인 존재로 보았다.
나는 홉스의 견해보다 루소의 견해를 더 좋아한다. 사실 개인적으로 루소의 책 두권(‘고독한 산책자의 몽상’, ‘사회계약론’)을 읽었는데 내 취향에 맞다.

홉스는 법과 질서가 없다면 사회는 갈등과 분열로 인한 혼란상태에 빠질거라고 보았는데 여기 방콕에서 자전거를 타다보면 홉스의 견해에 의문을 제기할 수 밖에 없다.

존재 이유를 알 수 없는 횡단보도마크와 신호등을 보다보면 강제적인 법과 체계 없이도 어떻게든 사회가 굴러갈 수 있다는 사실을 알 수 있다. 무질서 속의 질서라고 언뜻 보면 아무런 규칙이 없어보이는 이 곳에서도 도로 구성원들이 암묵적으로 지키는 어떤 룰이 있다.

다시말해 아무런 체계가 없는 이 바닥에서도 운전자들은 눈치와 암묵적 소통, 그리고 가끔 있는 배려를 통해서 교통의 흐름을 유지한다.
사람들은 때로 엄격한 규제 없이도, 상호 협력과 유연함으로 평화롭게 공존할 수 있다. 이는 루소의 주장처럼, 인간이 본래 선하고 협력적일 수 있다는 증거가 아닐까?

결국에 밤 8시가 다 돼어서야 숙소로 복귀할 수 있었다. 매연 냄새를 너무 오랫동안 맡아서 머리가 지끈거린다. 여기 호스텔은 작은 펍 같은 곳도 병행하는데 들어와서 맥주를 조금 마시고 자러 들어가기 전에 산책을 좀 했다. 아, 정말 방콕이라는 도시는 욕망과 환락의 도시이다. 수도 없이 이어져있는 유흥업소들은 사람들을 강하게 미혹한다.

행복에 다다르는 방법은 사람마다 다르겠지만 교과서적인 방법은 존재한다. 비교하지 않는것. 욕심을 줄이고 기대치를 낮추는 것. 우리의 유명한 스토아철학자들은 중용과 절제를 행복에 이르는 길이라고 보았다. 이 같은 차원에서 본다면 ‘도시’의 본질은 행복과 정반대에 있다. ‘도시’를 빨래감처럼 두 손으로 꾹 짜내면 ‘욕망’이라는 엑기스들이 물처럼 후두둑 떨어지리라. 자본주의 도시는 본디 욕망으로 굴러가니까.

뉴질랜드에 얼마나 있었다고 이 도시라는 공간에 내가 적응을 못하고 있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