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 재산을 처분하고 1년 6개월 간의 자전거 여행: 스위스에서 온 콜롬비아 부부의 조언

[동남아 자전거 여행] #16 태국 2025.01.02-03 치앙라이 가는 길, 그 곳에서 만난 자연 온천과 여행자들.

전 재산을 처분하고 1년 6개월 간의 자전거 여행: 스위스에서 온 콜롬비아 부부의 조언

2025.01.02

며칠 쉬다가 자전거를 다시 타러 돌아가는건 이상하리만치 늘 설렌다. 부정적인 감정보다는 긍정적인 에너지가 내 가슴과 머리를 채우는데 그 때 음악을 들으며 아침의 약간 쌀쌀하지만 상쾌한 공기를 들이쉬면 마음이 들뜨면서 신이난다. 2주 넘게 치앙마이를 꿈꾸며 달려왔지만 아이러니한건 도착했을 때 만큼 떠날 때도 딱 그만큼 들뜬다는 것이다. 언제나 현재 이 곳을 떠나는 아쉬운 마음보다는 새로운 목적지를 향한 기대가 더 컸다.

오늘은 아주 높은 산을 하나 넘어야한다. 전세계 캠핑 여행자들이 무료로 캠핑할 수 있는 곳을 알려주는 앱인 ioverlander에 따르면 산 너머 공짜 온천수 옆에 텐트를 치고 잘 수 있는 곳이 있다고 해서 그곳을 목적지로 잡고 달렸다. 무료 캠핑에 화장실도 있고 심지어 온천까지 즐길 수 있는 곳은 희귀하다. 오르막을 절반 쯤 올랐을 때 카페가 하나 보이기에 들어갔는데 러시아인 부부를 만났다. 남편은 치앙마이에 사는 로드자전거 동호인. 짐을 무겁게 매달고 여행하는 내 모습을 보고 꼭 사주고 싶다며 커피를 한잔 사주고 대화를 나눴다.

자전거 여행 시 노지캠핑(iOverlander 앱)
[자전거 여행] #02

스트라바 기록을 보여주는데 로드자전거답게 평균시속이 35km (나는 15~23km 사이) 이상 찍히고 하루에 180km는 우습게 달리며 일년에 자전거를 15,000km 씩 타는 매우 열정적인 자전거 동호인이었다.

이 부부와 대화를 나눴던 것 중에 가장 인상깊었던 것, 이 아저씨는 우리나라 영화감독 김기덕의 팬이었다. 그의 영화를 전부 다봤고 사생활도 자세히 알고 있었는데 그런건 신경 안쓴다고 했다. 러시아인이라 나는 도스토예프스키의 책을 좋아하고 그의 책을 많이 읽었다고 했다. 나는 김기덕 감독의 영화를 직접 본적은 없지만 간접적으로 많이 들어 알고 있는데 내가 그의 작품은 지나치게 어둡고 음울하지 않냐고 물으니 그 아저씨는 ‘아니다. 생각보다 재밌고 유쾌한 부분이 많다.’라고 했는데 도스토예프스키에 대한 그들의 물음에 나도 똑같이 대답했다는 점이다. “아니다. 그의 작품이 침침하고 암울해보이지만 유쾌한 부분도 많다.”

커피를 한잔 먹고 재밌는 대화를 나누니 힘이 다시 생겨서 오르막을 비교적 수월하게 넘었다. 치앙마이는 태국 북부의 중심도시인데 여기부터 북부로 가면 갈수록 이제껏 남쪽에서 보았던 태국과 완전히 느낌이 다른 태국을 경험할 수 있다. 경치 좋고 조용하고 편안한 휴양지, 산과 야자수가 그런 느낌을 자아내는 거 같기도 하다.

목적지에 도착해서 그 온천을 관리하고 있는 아저씨에게 여기 텐트를 쳐도되나고 물어보니, 안된다, 여기 숙소가 있으니 돈을 내고 자라고 했다. 어떻게든 캠핑을 하고 싶어서 정자가 하나 보이길래 그 정자를 관리하는 숙소의 주인에게 여기 텐트를 치고 자도 되냐고 물으니 흔쾌히 허락하셨다.

온천을 좀 즐기고 텐트로 들어갔다. 엄청나게 시끄러운 노래소리가 밤 12시 넘게까지 이어져서 아주 늦게 겨우 잠들었다. 태국 사람들은 커다란 앰프를 집 앞에 설치해놓고 빠르고 시끄러운 템포의 음악을 듣고 노래하는 것을 좋아하는데 익숙한 장르의 음악이 아니라서 꽤나 거슬린다. 앰프 우퍼의 성능은 또 얼마나 좋은지 드럼, 베이스 소리가 너무 시끄러워 귀마개로 귀를 막아도 소용이 없다.


2025.01.03

아침에 일어나니 근처에 웬 짐을 잔뜩 실은 자전거가 두대 보인다. 콜롬비아 출신의 스위스에서 사는 부부인데 모든 재산을 처분하고 자전거 여행을 시작했다고 한다. 스위스에서 출발해 이스탄불을 넘어 터키로 들어가고 터키를 한바퀴 돌고나서 코카서스 3국을 지나 러시아로 진입, 카자흐스탄, 키르키즈스탄, 중국을 차례대로 거치고 이곳 동남아시아로 들어왔다고 한다. 현재 1년 6개월 째 여행중. 내가 베트남 하노이나 중국 쿤밍에서 비행기를 타고 터키로 넘어가서 자전거 여행을 계속할 생각이라고 하니, 그냥 자기들처럼 대륙을 자전거로 넘으라고 한다. 라오스도 한참을 여행하고 태국으로 들어왔다고 하는데 라오스에서 숙소문제는 어떻게 해결했냐고 물으니, 논밭 옆에 지어진 작은 정자같은 곳에서 자면 아무 문제가 없다고 했다. 이들도 오늘 나처럼 치앙라이로 가는데 늦게 출발할 거 같아서 서로 인스타그램 계정을 주고받고 나 먼저 출발했다.

치앙라이에 거의 도착했을 때 유명한 White Temple에 방문해서 구경을 좀 하고 숙소를 검색했다. 태국 북부로 올라갈 수록 캠핑장이 많다. 치앙라이 근처에도 인당 150바트(6500원)만 내면 되는 캠핑장이 있어서 오늘은 그곳에 묵기로 결정했다. 인스타그램으로 아침에 만난 부부에게 잘 곳을 구했냐고 물어보니 아직이라기에 이 곳을 추천했다.

주인은 아주 유쾌한 태국인이었다. 두 부부가 여기 올까말까 고민을 하는데 두명 합해서 200바트에 해주면 안되겠냐고 하니 흔쾌히 오케이를 한다. 레스토랑과 캠핑장을 같이 운영하는 비지니스맨인데 놀라울 정도로 친절했다. 오늘 여기 캠핑장을 이용하는 손님은 우리 3명밖에 없었는데 거기 있는 물이며 음식이며 의자, 테이블 전부 마음껏 이용하라기에 두달만에 처음으로 캠프파이어도 했다. 근처 편의점에서 너구리 라면를 두개 사와서 끓여먹었는데 한국에서 먹던 맛과 미묘하게 달라서 조금은 실망스러웠다.

간만에 불장난을 하다가 늦잠을 잤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