다낭 살이 #03: 웃지 않는 사람들, 끈끈한 사람들

[동남아 자전거 여행] #50 베트남 2025.03.14 - 22

다낭 살이 #03: 웃지 않는 사람들, 끈끈한 사람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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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2025.03.14

다낭에 선짜(Sơn Trà)반도가 있는데 일명 Monkey Mountain. 이름답게 원숭이가 참 많다. 혈혈단신으로 혼자서 원숭이 숲을 헤치며 구경하고 클로드 아저씨 팀과 다시 합세했다. 캄보디아에서 원숭이에게 한 번 당한 이후로 원숭이만 보면 좀 긴장된다.

진짜 사람은 한 명도 없고 원숭이밖에 없는 것이 간만에 진짜 모험을 하는 느낌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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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
태국과 베트남 사람들은 정반대의 성향을 가졌다. 태국 사람은 겉모습이 유하고 처음보는 사람에게도 마음을 쉽게 열고 잘 웃고 친절하다. 베트남 사람은 태국 사람처럼 잘 웃지 않고 그다지 친절하지 않다. 경계심이 강한 듯 하다.(물론 당연히 사람에 따라 다르다.) 내부와 외부 경계의 벽이 태국보다 두껍다. 하지만 자기들 끼리는 굉장히 끈끈하고 의리가 있는 듯 하다. 멀리가는 서비스 택시를 탔는데 처음보는 사람들끼리 잘 떠들고 웃고 논다. 여행자에게는 보여주지 않는 모습이다. 베트남 사람들의 강한 애국심이 이런 성향에서 비롯되었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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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낭에서 매일 매일 하루도 빠지지 않고 가는 반미집과 국수집이 있다. 반미 아주머니는 내가 가기만 하면 환하게 웃으면서 내가 매일 먹는 메뉴를 만들어주신다. 국수집 알바생들은 처음에 아무리 내가 미소를 짓고 인사를 잘 해도 한 번을 웃어주지 않더니, 10번 이상 가니까 그제서야 한번씩 웃어주고 아는체를 해준다. 카페도 매일가니 드립커피도 몇 개 선물로 받았다.

베트남문화와 베트남인들에 대한 이해가 깊어지니 여기서 내가 느꼈던 부정적인 감정들도 많이 희석되었다. 엘리베이터에서 내가 내리기 전에 먼저 밀고 들어오고 나를 “You”라고 부르고, 내 어깨를 툭툭치는 그런 행동들은 사실 내 방문을 노크도 없이 벌컥 열고 들어오는 우리 아빠의 행동과 비슷한 거다.

그래도 오토바이 빵빵소리는 아직 적응이 안된다.

#3
며칠 전에 클로드아저씨 일행과 호이안에 놀러갔을 때 자전거를 타고 있는 여자를 한명 만났었다. 호이안 밑에 있는 도시인 땀키(Tam Kỳ)에 사는 친구인데 친구와 함께 지금 호이안으로 놀러왔다고 한다. 2025년 7월부터 땀키가 다낭시 안에 행정구역으로 편입된다고 슬퍼했다. 땀키에서 네일샵 직원으로 일하고 있다고 했다.

애국심이 얼마나 대단한지, 핸드폰 배경화면에 베트남 국기가 있었다. 베트남은 미국과, 중국, 프랑스까지 모두 물리친 나라라는 자부심이 있었다.

바로 이 점이 내가 베트남에서 느낀 일종의 '단단함'의 일부다. 우리는 거대서사가 사라진 시대에 살고있다. 니체는 신이 죽었다고 선언했고 공산주의 혁명도 사실상의 실패로 돌아갔다.

지그문트 바우만은 현대를 액체 근대로 진단했다. 근대를 단단하게 붙들어주고 있었던 직업, 계급, 공동체, 가족, 국가, 관계, 종교 같은 것이 예전보다 훨씬 유동적이고 불안정하며 쉽게 바뀐다는 이야기다.

하지만 베트남에는 아직 거대서사가 남아있다. 전쟁의 승리라는 강력한 역사적 서사를 공유하고 있고 현재 국민들은 경제 성장이라는 공동의 목표를 향해 달려가고 있다.

"내일은 오늘보다 나을 것"이라는 확신이 사회 전반에 흐른다. 이 때 서사는 파편화되지 않고 하나의 거대한 흐름을 형성한다.

이 때문에 사람들은 하루 12시간, 주 6일의 노동 속에서도 그것을 단순한 소모로만 느끼지 않는다.

#4
다낭 피자가게에서 일하는 40살 여성을 만났다. 처음에 내가 베트남 사람인줄 알고 베트남어로 말을 건네는데 우물쭈무하니 재빨리 영어로 말을건넨다. 영어 수준이 원어민 뺨치는 수준이라 피자를 시켜놓고 이런 저런 얘기를 나눴다. 미국과 일본 유학 경험이 있고 유럽으로 여행도 몇 번 다녔다고 한다. 거기에다 남편이 미국인이다. 간만에 말이 통하는 베트남 사람을 만나서 베트남에서 느꼈던 안좋은 경험들을(차별과 불친절 등)을 마구 쏟아내었다. 그 분 말로는 코로나 때, 비교적 안전하고 저렴한 베트남에 외국인이 대거 유입되면서 각종 패악질을 너무 많이 부린 나머지 많은 베트남 사람들이 외국인 관광객에 대한 반감을 가지게 되었다고

사실 내가 느낀 부정적인 감정들은 베트남인의 기본적인 성격에서 비롯된터라 이 아줌마의 말은 그저 뜬구름 잡는 소리에 지나지 않았다. 몇 번의 대화가 더 오가고, 이 사람이 유럽과 일본에서 본인이 당했던 인종차별의 일화를 들려주었다.

독일인 남자친구와 함께 놀러간 유럽여행에서 겪은 각종 수군거림과 성희롱의 위협 속에서 종국에는 후드를 뒤집어쓰고 다른 사람이 본인을 식별하지 못하게끔하고 다녔다고 한다. 밤에 남자친구 차를 타고, 남자친구가 잠깐 자리를 비울 때는 차에 불을 전부 끄고 어둠 속으로 숨어야했단다. 일본에서도 베트남 여성으로서 각종 수모를 겪어야 했고, 결국에는 다시 다낭에 돌아와 살면서 다시는 유럽과 일본으로 여행을 가지 않으리라 다짐했다고.

나는 이제껏 내 기분에만 집중했지, 베트남 여성으로서 이 사람이 느꼈을 차별에 대해서는 처음 생각해봤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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