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철도가 공간을 살해했다": 2주만에 도착한 북방의 장미🌹, 치앙마이
[동남아 자전거 여행] #13 태국 2024.12.27-28 방콕에서 자전거로 꼬박 2주 걸려 드디어 도착한 치앙마이. 그곳에서 보낸 며칠
2024.12.27
어제 만난 벨기에 사람은 아침 7시 반에 먼저 출발한다며 문자를 보내왔다. 오늘 하나 내일 하나, 제법 높고 험한 산을 넘어야 한다. 내일이면 태국 여행의 1차 목적지인 치앙마이에 도착할 예정이다. 오늘은 그 사이에 있는 작은 마을에서 머무를 예정이다.

간만에 오르막은 진짜로 힘들었다. 한 10km 정도를 줄창 올라가고 그 이후로 쭉 내리막인데 간만에 기분이 째질듯이 좋았다. 희한하게도 평지만 달리는 날보다 오르막 내리막이 반복되는 날 라이딩이 유난히 기분이 좋다. 당연히 가파른 오르막은 죽을만큼 힘들지만 내리막에서 느끼는 쾌감이 있다. 찾아보니 달리기 뿐만 아니라 장거리 자전거 같이 지속적인 반복 유산소 운동은 모두 러너스 하이를 느낄 수 있다고 한다. 내가 자주 느꼈던 이 쾌감은 러너스 하이 비슷한 무엇이었다고 생각한다. 어디선가 “오르막 없이 내리막을 달리는 것은 자연법칙 위반이다.”라는 말을 들은 적이 있는데 맞는 말인 거 같다. 강한 쾌락은 늘 강한 고통과 함께 찾아오고, 경외와 경탄의 순간은 늘 극한에 상황에서 발생한다.
오늘은 67km만 가면 돼서 여유롭다. 중간에 카페에 들러서 커피도 마시고 개, 고양이랑 놀다가 느긋하게 숙소로 진입했다. 태국에서는 숙소 예약을 할 필요가 없다. 아무 마을에나가서 구글맵에 resort라고 검색하면 결과가 주르륵 나오는데 가격이 싸다는 리뷰가 있으면 찾아가면 된다. 오늘 간 곳은 300바트(12,500원)짜리 방이다. 텐트도 있으니 정 안되면 길바닥이나 절에서 자면 될 일이다.



숙소에 짐을 풀고 자전거를 고치러 갔다. 오늘부터 갑자기 기어 변속에 뭔가 이상이 있어 혼자 고쳐보려고 낑낑대다 변속이 아예 안되는 지경에 이르렀다. 근처 바이크샵에서 고치고 얼마냐 물어보니 그냥 공짜라고 가라고 한다. 이게 바로 태국의 남짜이문화일까. 직역하자만 마음의 물. 우리나라의 정과 같은 개념인데, 자비심, 배려심 혹은 곤경에 빠진 남을 도와주려는 마음이라고도 한다. 여행을 할 때 이런 사소한 배려와 따뜻한 마음이 가장 기분 좋은 요소이다.



고마워요. 다들.
2024.12.28
오늘의 목적지는 치앙마이. 과거 란나 왕국의 수도이자 ‘북방의 장미’라는 멋진 이름을 가진 도시이다. 작년부터 한 화상영어 선생님 중 한분이 치앙마이에 살면서 많은 얘기를 들었다. 서양 사람들이 많이 찾아오는 관광도시인데 최근에는 한국인을 비롯한 동양인 관광객도 많이 늘었다. 하도 치앙마이, 치앙마이해서 어떤 곳인지 내 두 눈으로 꼭 확인을 해봐야겠다.
오늘은 어제보다 더 가파른 산을 넘어야 한다. 두 가지 길이 있는데 하나는 고속도로, 하나는 내가 넘는 산이다. 산 입구로 다가가니 군인들이 길을 통제하고 있다. 급경사가 지속되어서 무거운 화물차는 지나가면 안되기에 이렇게 지키고 있는 듯 했다. 태국은 군부독재의 나라라서 총을 들고 있는 군인을 마주치면 솔직히 좀 무섭다.






오르막이 시작된다. 상당한 급경사이다. 어느정도 경사까지는 저단기어를 놓고 달릴 수 있는데 그것보다 조금 더 가팔라지면 내려서 자전거를 끌어야한다. 하지만 오늘은 내려서 끌어도 쉽지 않은 경사였다. 한참을 헥헥대며 올라갔다. 이 정도 경사면 차량 통제를 하는게 당연하겠다 싶었다. 만약 내가 처음부터 이 정도 장거리 여행을 갈 목적으로 자전거를 샀다면 아마 조금 더 여행에 특화된 자전거를 샀을거다. 기어비도 여행에 적절한 것으로 말이다. 현재 내 자전거는 짐을 잔뜩 싣고 가파른 경사를 올라가기는 힘들다.
아직 숲과 산에 적응이 안돼서 여전히 두려움이 남아있다. 특히나 잘 가던 중 도로 옆 수풀에서 부시럭 거리가나면 심장이 철렁 내려앉는다. 개와의 전투는 이제 완벽하게 적응이 되었다. 아직 중간 중간에 깜짝 놀랄 때가 많긴하지만 나 나름의 노하우가 생겼다. 우선 전방에 개가 보이면, 특히나 약간 까불락거릴거 같은 개가 보이면 가방에 막대기를 꺼낸다. 개가 조금 반응할려고 하면 막대기로 내 헬멧을 깡깡 때린다. 웬만한 개들은 전부 꼬리를 내리고 쫀다.
여유가 생기니 개에게도 측은지심이 생긴다. 그냥 무섭게만 생겼었던 개들이었는데 이제 보니 눈 한쪽이 부은 개, 다리를 절뚝거리는 개, 온 몸에 멍이 든 개 등.


동네 개들이 위협적으로 짖으니 내가 지나갈 수 있게 동네사람들이 전부 도와준다.

산을 빠져나오면서 지키고 있던 한 군인에게 이 산에는 왜 이렇게 군인들이 많냐고 물으니 “카운트다운”이라고 얘기했다. 내가 추측한 바로는, 치앙마이에서 새해 맞이 카운트다운을 할 때 불법으로 풍등을 많이 날리는데 안전관리 차원에서 군인들이 배치된 거 같다.


드디어 2주간 마음 속에 품고 달려왔던 치앙마이로 들어선다. 독일의 시인 하인리히 하이네는 유럽 대륙에 처음 철도가 도입될 때 “철도가 공간을 살해했다.”라는 말을했다. 철도와 자동차, 비행기 같은 문명의 우리 삶에 분명한 이점을 가져왔지만 그 이점의 크기만큼 거리의 인플레이션이 발생했다. 나는 어릴 때 우리 집에서 3km 정도 떨어진 옆 마을로 동네 형들과 함께 도롱뇽을 잡으러 가는 진정한 의미의 ‘모험’을 했었다. 그 이후로 차와 비행기를 타고 많은 여행을 했지만 그 때만큼의 참된 모험은 그 이후로 내 인생에 단 한번도 없었다. 수 천키로미터 떨어진 해외에 간다한들 그 시절, 어린아이였던 내가 가졌던 그 막연한 동경과 마음의 떨림을 재연해낼 수 있을까.
- 하인리히 하이네
예기치 못한 기쁨 | C. S. 루이스, 강유나 저
방콕에서 치앙마이까지는 버스나 기차를 타면 10~15시간이면 도착하는 거리이다. 슬리핑버스를 탄다면 한 숨 자고 나면 도착하는데 나는 그 정도의 거리를 2주를 달렸다. 자전거 여행자들이라면 모두 알고 있는 경구가 하나 있다.
“걷는건 너무 느리고, 차는 너무 빠르다.”
정말이다. 예전부터 치앙마이에 정말 가고 싶었지만, 그 곳에 하루만에 도착했다면 나는 아마 많은 것을 놓쳤을 것이다. 모든 것을 즉각적으로 얻어낼 수 있는 시대에 한 가지를 마음에 품고, 마음 속에서 이리 굴리고 저리 굴리고, 이리 맛보고 저리 맛보고 할 수 있는 기회가 주어진 건 감사할 일이다.
치앙마이에서는 쉬면서 사람들과 어울리며 구경도 하고 싶어서 시내 가까운 곳에 호스텔을 하나 잡았다. 호스텔에는 한국인 여자, 러시아 남자 부부가 있기에 함께 저녁을 먹고 근처 재즈바에 가서 좀 놀다가 들어왔다.







이곳은 인싸들의 도시. 나같은 거지 여행자는 범접할 수 없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