보들레르와 창녀
[동남아 자전거 여행] #04 태국 2024.12.14 방콕의 거리에서 마주한 인간 군상, 욕망, 자본주의와 돈. 보들레르의 시를 떠올리게 한 도시 방콕의 분위기와 하루를 기록했습니다.
2024.12.14
오늘은 딱히 뭘 안하고 쉬리라 마음 먹었다. 장 적응 문제로 인해 화장실에 들락날락 거리느라, 시차 적응 문제로 인해 방콕에 온 이래로 잠을 깊게 오래 못자고 있다. 오늘도 생각보다 일찍깨버렸다. 덕분에 밀린 블로그도 많이 쓸 수 있게 됐다.
아침 8시에 밖에 나가니 벌써부터 로컬 식당들은 문전성시이다. 커피를 사러 잠깐 나왔다가 밥을 먹어버렸다. 방콕에 며칠 동안 있으면서 나의 목표는 무진장 많이 먹기이다. 자전거를 많이 타다보니 아무리 먹어도 살이 자꾸 빠지고 자외선으로 인해 얼굴이 타다보니 사진을 보니까 금세 몇년은 늙은 느낌이 들었다.

숙소 바로 옆에 꽤 유명한 음식점이 있다. 미슐랭 간판이 많이 붙어있는데 진위여부는 확인 못했다.
침대에 앉아서 한참 블로그를 쓰다가 지루해져 밖에 나가서 산책을 좀 했다. 스피킹 위주로 훈련을 시키는 핌슬러라는 어플로 태국어 공부를 하면서 근처에 있는 공원을 누볐다.
나는 언어만큼 그 나라와 가까워질 수 있는 다른 수단은 없다고 생각하기에 여행을 하면서 핌슬러라는 어플로 최대한 그 나라 언어들을 공부하기로 다짐을 했다. 핌슬러는 한 강의당 30분씩, 30개의 챕터로 이루어져 있는데 메이져 언어들은 30개 챕터가 5개, 즉 150개의 강의가 있고 마이너한 언어들은 30개의 강의밖에 없다. 그래서 나는 이 어플로 동남아에 있을 때 태국어와 베트남어를 최대한 공부할 예정이다.
조금이라도 태국어를 할 줄 알면 로컬들과 더 가까워질 수 있기도 하다. 이 근처를 산책하다 보면 정말 다양한 인간군상들을 마주치게 된다. 대부분의 사람(내가 인식한 사람들이 이 사람들 뿐이라 ‘대부분’이라고 표현하게 되는 거일지도 모르겠다.)이 외극인 관광객인데 재밌는 모습들이 많이 보인다. 특히나 이 곳에서는 문명이라는 허례허식을 벗겨낸 자들의 날 것 없는 욕망을 직시할 수 있다.

젊은 태국 여자를 옆에 끼고 돌아다니는 남자들을 수도 없이 볼 수 있는데, 이는 동서양과, 젊은 사람 늙은 사람을 막론하지 않는다. 늙은 서양 할아버지 옆에 붙어다니는 진한 화장을 한 태국 여자를 발견하는 건 쉬운 일이다. 이들은 서로 서로의 니즈를 충족하고 있다. 한 쪽에선 성욕을 해소하고 한 쪽에선 돈과 허영심을 채운다.
이 나라에 발자크 같은 소설가가 있었다면 이 수많은 인간군상을 어떻게 다채롭게 풀어냈을 지 궁금하다. 아마 내가 알지 못하는 태국의 소설가들이 이에 관한 많은 소설을 썼을 지도 모를 일이다.
돈에 대한 강한 추구, 성애의 욕망, 음식에 대한 욕망, 분주함과 축제 분위기로 이 도시는 들끓는다. 어떻게 보면 모든 사람들이 돈이라는 한 지점만 보고 있는 것 같다. 벌어드리는 사람도, 돈을 써서 쾌락을 얻어내는 사람도.
하지만 그렇다고 해서 여기가 자본주의의 질서만이 잠식한 삭막한 땅일까? 그렇지는 않다. 이런 곳에서도 사람이 살아간다. 이틀 전 내 자전거가 지나갈 수 있도록 뒤에 있는 수백대의 차를 잠시 막아서선 손을 휘저어주던 그 차주인은, 사심없는 이타심을 발휘함으로써 이 곳의 질서를 역행하는 사람이었다. 왜 그랬을까? 그 사람도 정확한 이유를 모르겠지.
사창가에서도 사랑은 꽃피운다.
사람은 풀 한포기 없는 사막에도 아득바득 기어들어가 인간성을 뽐낸다.
우리 위대한 예술가들은 그 곳이 어디건 이 위대한 인간성을 발견해냈다.
방콕은 19세기 프랑스 파리를 살아가며 창녀들과 볼풀없이 늙은 여자에 주목했던, 시인들의 왕이라 평가받는 보들레르의 시를 떠올리게 하는 도시이다.
나는 지옥의 매력으로 끊임없이 나를 회춘시키는
그 거대한 창녀에 취하고 싶었다.
무겁게, 어둡게, 감기에 걸려, 네가 아직도
아침의 이불 속에 잠들어 있건, 혹은 순금으로
장식 끈을 단 저녁의 장막 속을 활보하건,
나는 너를 사랑한다, 오 치욕의 수도! 창녀들과
강도들아, 종종 이렇게 너희들이 가져다주는 것은,
불경한 속인들이 알지 못하는 쾌락.
-샤를 피에르 보들레르『파리의 우울』에서
오늘은 별다른 걸 하지 않았다. 산책을 하고 돌아오니 미국친구 아리엘의 표정이 심난하다. 호스트에게 다가가 살짝 물었더니 아리엘이 핸드폰을 도난 당했다고 한다.
태국 국기를 자전거에 꽂고 다니고 싶어 밖에 나와 여러 군데 돌아봤다. 대형 쇼핑센터에도 가보고 작은 기념품샵에도 가봤는데 태국 국기를 살 수 있는 곳은 없었다. 대신에 멋진 코끼리가 그려져있는 민소매 티셔츠를 하나 사서 숙소로 돌아왔다. 아리엘에게 줄 프로틴음료와 함께.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