방콕에서 자전거 타다 죽을 뻔한 사연 (feat. 8차선을 가로지르는 법)

[동남아 자전거 여행] #02 태국 2024.12.12 방콕에서의 라이딩 체험. 그리고 호스텔에서 만난 태국인, 미국인, 인도 친구들과 함께한 배드민턴

방콕에서 자전거 타다 죽을 뻔한 사연 (feat. 8차선을 가로지르는 법)

2024.12.12

여기 숙소는 시내와 꽤나 멀리 떨어진 곳이다. 에어비앤비로 프롬퐁역 주변에 있는 한 호스텔 이틀치를 예약했다. 메세지를 보내 문의해보니 CCTV가 24시간 돌아가고 있어서 자전거 보관 걱정은 하지 말라고 한다.

생각해보면 뉴질랜드에서 CCTV가 있는 곳을 본 기억이 없다. 개인의 사생활을 중요시 하는 서구권 국가에서 CCTV는 여전히 빅브라더를 떠올리게 하는 전체주의적인 물건인가보다.

Komoot을 사용해서 위치를 찍어보니 여기서 28km 정도 떨어져있다. 방콕은 놀라울 정도로 평지지역이다. 사실 방콕 뿐만이 아니라 내가 가려는 루트인 태국, 라오스, 캄보디아, 베트남의 대부분의 지역이 평지이다. 아 물론 태국과 라오스 북부지역은 극심한 산악지대라 경사가 가파르고 오르막, 내리막이 많다. 하지만 뉴질랜드와 비교해본다면 훨씬 더 평탄한 지역이 맞다.

28km 평지라면 길이 잘 닦여 있다면 원래 1시간 반만에 도착할 수 있다. 하지만 여기는 방콕이 아닌가. 제멋대로 생긴 길에다가 엄청난 양의 차량때문에 가는 길이 무지막지하게 힘들었다. 자전거를 들고 육교를 수시로 건너고 차, 오토바이와 함께 도로를 달렸다. 방콕에서 자전거는 느린 오토바이라고 생각하면 차라리 마음이 편하다. 머릿 속으로 서울 XX대로들을 상상한 후에 미로처럼 얽히 섥히 도로들을 겹쳐놓고 거기서 차들과 함께 자전거를 탄다고 생각하면 된다. 만약 내가 우회전을 하고 싶으면 차가 쌩쌩다니는 차선 3~4개를 자전거로 건너서 가야한다.

한번은 네비게이션을 아무리 쳐다봐도 길을 모르겠어서 도로가 갈라지는 한중간에서 이도 저도 못한 채 차들 사이에 끼여버렸다. 이 때 한명의 멋진 운전기사가 속도를 줄이고 뒤에 있는 차들을 막아선 채 팔을 휘저어주지 않았더라면 나는 거기서 한시간 넘게 갇혀 있어야 했을지도 모른다.

그래도 공항에서 좀 떨어지니 사정이 한결나아졌다. 겨우겨우 호스텔에 도착해서 내 침대 쪽으로 가는데 한 미국인이 나보고 Rock climber냐고 묻는다. 체형이 클라이머의 체형이라서 그렇게 물었다고 한다.(도대체 어디가?) 알고보니 본인이 Rock climber다.

나는 cyclist이라하고 내 일정을 설명해주니까 자기 친구는 치앙마이에서 인도네시아까지 매일 45키로미터를 50일간 달려서 여행을 했다고 한다. 인간이란 대단하지 않은가?

이따가 여기 친구들이랑 배드민턴을 치러 갈건데 같이 갈거냐고 묻는다. 마침 할 것도 없는터라 당연히 그러겠다고 했다. 오후 3시까지 어디 체육관으로 오라고 한다. 근처에 있는 마사지샵에서 만원주고 한시간 전신 마사지를 받고, 간단히 밥을 먹고는 배드민턴 장으로 자전거를 타고 갔다.

같이 배드민턴 치는 친구들은 나 포함 총 5명. 2명은 여기 호스텔 공동주인 여자들, 한명은 인도인 여자, 한 명은 아까 그 미국인 남자이다. 2:2 팀으로도 치고 1:1로도 몇 번 치니 2시간이 훌쩍 지났다.

끝나고 같이 저녁을 먹기로 했다. 다른 친구들은 오토바이를 타고 가고 나는 자전거를 타고 가서 조금 늦게 합류. 인도인 친구는 다른 약속이 있어서 참석을 못하고 대신 다른 태국 여자 한명이 있다. 이야기를 들어보니 이 3명의 친구가 함께 이 호스텔을 공동으로 운영한다고 한다.

이 친구들과 대화를 나누다보니 태국인들의 특징 몇가지를 발견했다.

  • 여전히 아주 미신적이다. 자전거를 타고 동남아를 돌거라고 하니까 태국 시골지역의 작은 숙소에는 귀신이 나온다고 한다. 나를 그냥 겁주는 거라고 보기에는 한껏 진지한 표정이라, 진짜로 그 사실을 믿고 있는 듯하다.
  • 라오스에 간다고 하니 라오스 사람들은 술에 몰래 메탄올을 타는 나쁜 사람이 많기 때문에 조심하란다. 맥주 외에 다른 술은 마시지 말라며.
    나는 이 말을 믿지 않는다. (하지만 몇 주 뒤에 이 말이 진실임을 알았다.)미국인들은 멕시코가 위험하다고 하고 멕시코인들은 과테말라가 위험하다하고 과테말라 인들은 콜롬비아가 위험하다고 한다. 우리나라-중국-일본은 서로를 향해 항상 으르렁거리며 영국과 프랑스인들의 관계도 그와 비슷하다. 원래 인접한 국경사이의 사람들은 서로를 악마시하는 법이다.
  • 음식에 아주 관대하다. 나는 당연히 5명이서 음식 값을 나눠낼 줄 알았다. 그런데 원래 태국은 음식을 대접하는게 맞다면서 음식값은 자기들이 낸단다. 전혀 신경쓰지 말라며.(사업을 하는 호스텔 주인들인데 이렇게 관대해도 되나?)

이 중 키가 아주 큰 친구 한명은 예전에 이탈리아 남자를 사귄적이 있어서 유럽에 자주 놀러갔었다고 하는데 유럽 사람들은 너무 마인드가 닫혀있고 보수적이라고 투덜거렸다. 나는 항상 한국, 중국, 일본 사람 혹은 흑인에 대한 백인들의 태도(차별이나 시선)에 대해 생각해봤지 동남아 사람들에 대한 이들의 태도에 대해서는 단 한번도 생각해본 적이 없다. 아마 이 친구가 느꼈던 감정은 우리가 느낄 법한 소외감보다 훨씬 더 컸으리라 생각된다.

여기 밤 10시면 뉴질랜드는 새벽 4시이다. 아직 시차적응이 제대로 되지 않아서 저녁 8시만 되면 잠이 쏟아진다. 그리 오래 시간을 끌지 않고 호스텔로 다시 들어왔다. 아직 일정에 대해서 제대로 생각해보지 않았는데 방콕에서 다음주 월요일 쯤에 자전거를 타고 출발할 예정이다.

이틀간 예약했던 여기 호스텔을 이틀 더 연장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