방콕 탈출, 그리고 시작된 들개 패거리와의 전쟁
[동남아 자전거 여행] #06 태국 2024.12.16-17 방콕에서 깐짜나부리로 가는 길에 마주친 개떼
2024.12.16
태국의 도로 사정을 모르고 방콕을 벗어나는데 얼마나 걸릴지 잘 몰라서 일찍 일어나서 준비를 했다. 일단 방콕 북쪽에서 내가 아는 도시는 치앙마이와 치앙라이밖에 없어서 여행의 1차 목적지는 치앙마이(700km 이상)로 생각하고 있다. 치앙마이에서 며칠 쉬고 움직일까 싶다.
방콕 왼쪽으로 130km 가면 깐짜나부리라는 도시가 하나 있는데 거기에 부모님과 잘 아는 선교사님 부부가 살고 있다. 십 몇년 째 살고 계시다는데 인사도 나누고 태국에 대한 정보도 얻을 겸 이틀잡고 깐짜나부리로 갈 계획이다.
68km 정도 가면 있는 도시에 부킹닷컴으로 19,000원 짜리 숙소를 예약했다. 동남아는 캠핑장이 거의 없기 때문에 대부분 숙소에서 자게 될 거 같다. ‘자전거로 여행하는 사람들’이란 카페에서 동남아 자전거 여행을 오래 하셨던 분에게 숙박을 어떻게 해결하셨는지 물어보니 큰 도시에서는 부킹닷컴, 작은 동네에서는 절과 마을 회관을 주로 이용하셨다고 한다. 절과 마을 회관이라…

방콕을 벗어나는게 많이 힘들거라 예상했지만 네비가 교통이 많이 없는 곳을 잘 알려줘서 그런지 생각보다는 힘들지 않았다. 태국은 북쪽 산지로 올라가기 전까지는 대부분 평지라 자전거가 쌩쌩 잘 나간다. 태양은 뜨겁지만 현재 건기라 습하지 않아서 정말 기분 좋게 라이딩했다. 이런 식으로만 간다면 매일 매일이 행복할 거 같았다. (하지만 바로 다음날 태국 자전거 여행의 최대 복병을 깨닫는다.)
어제 잠이 안와서 태국 약국에서 받은 트라조돈 50mg을 먹었는데 이것 때문에 기분이 좋은가 의심이 갈 정도로 기쁨에 찬 라이딩을 즐겼다.(트라조돈은 세로토닌 신경전달에 영향을 주는 약물이다.)
정말 방콕을 딱 벗어나자마자 거짓말처럼 시골길 느낌이 나는 길이 시작된다.







특히나 뉴질랜드에서는 식당에서 밥을 먹는 것은 꿈도 못꾸었는데, 여기는 길거리에 노점상들이 널려있다. 외국인이라 돈을 더 높게 받는다는 의심이 들기는 하지만 그걸 감안하더라도 한끼에 5000원 정도면 아주 든든하게 먹을 수 있다.(두 그릇 값이다.) 거기에다 1500원 정도면 각종 쉐이크 음료수까지 마실 수 있으니까 식욕은 마음껏 채울 수 있다.
역시나 komoot 앱은 나를 차가 많이 없는 시골길로 안내했다. 그 덕에 태국 로컬의 분위기를 잔뜩 만끽할 수 있었다.
68km에다가 평지라 금방 목적지에 도착했다. 숙소에 자전거를 올려다 놓은 후에 침대 위에다 텐트를 쳤다. 이러면 모기나 각종 벌레로부터 안전하게 잘 수 있다. 태국의 모기는 뎅기열, 말라리아 같은 전염병을 옮길 수가 있어서 특히나 주의해야한다.
밖으러 나와서 밥을 먹을 곳을 찾으러 다녔다. 지나가는 길에 슈퍼가 있어서 괜히 슈퍼 아줌마에게 이때까지 배운 태국어를 좀 써보기도 했다. 그 아줌마는 나보고 ‘태국 여자친구가 있구나!’라고 확신하며 자꾸 캐물었다.
가장 싼 숙소를 예약했기 때문에 음식점까지 꽤나 거리가 있었다. 그래도 여전히 잘 때까지 시간은 많다. 그래도 해가 지는 시간인 5시 50분 전까지는 숙소에 들어와야 한다.


침대 위에 텐트를 치면 모기, 베드버그 등을 막을 수 있다.
2024.12.17
70km 정도만 가면 깐짜나부리에 있는 선교사님 집에 도착한다. 아마 오후 2시 이전에 도착할 수 있지 않을까 싶다.
일전에 komoot 앱이 넓은 도로가 아니라 작은 시골길로 안내해줘서 너무 좋았다고 한 적이 있다. 오늘 이전까지는 그랬다. 차가 많이 다니는 도로보다 한적한 시골도로가 경치도 좋고 라이딩하기 편한게 사실이다. 하지만 태국에서는 이야기가 다르다.




일단 시골 마을에는 개가 너무나도 많다. 개는 사람들과 함께 사는 동물인 만큼 주로 마을 안에 사람들과 같이 살아가는데, 집집마다 개가 있는 것은 물론이고 주인 없는 들개들도 온 천지 사방에 있다. 그리고 대부분의 집 주인이 개를 묶어 놓지 않고 풀어놓는다.
우리나라도 저녁노을 어스름 즈음에 시골에 외부인으로서 들어가면 마을의 개들이 전부 짖어대는 것을 들을 수 있다. 근데 태국의 시골은 우리보다 더 시골 느낌이고 개가 집 담벼락에 갇혀있는 것이 아니라 길 밖에 나와있다. 밤이 되면 이 개들은 더 사나워져 자기들끼리 영역 다툼으로 하기도 한다고.
태국 자전거 여행 후기를 몇 번 읽으면서 길거리의 개가 꽤나 스트레스가 될 것이라는 것을 어느정도는 예상하고 있었다. 윤회사상과 각종 사회, 경제적 이유 때문에 들개들을 그냥 길거리에 방치한다고 한다. 하지만 아직까지는 별 일 없었기에 약간은 과장된 것이 아닐까 생각했는데 전혀 과장이 아니라는 것을 오늘 깨달았다.
komoot 네비게이션이 안내해준 한적한 시골 마을로 들어가서 개를 한마리 만나는 순간 그 개는 무자비하게 짖어댄다. 그러고는 죽일 듯이 쫓아온다. 한마리가 짖는 소리를 들으면 그 주변에 있는 개들이 골목 골목에서 튀어나오는데 금방 한 마리가 개 패거리가 된다. 한 마리라면 내 주먹과 다리로 상대해봄직 하지만 패거리라면 얘기가 다르다. 다굴 앞에 장사없다.
난생 처음 겪는 이 일로인해 식은땀을 무지 흘렸다. 예전에 내가 어디서 읽었던 바로는 중형견만 돼도 성인남자가 이기는 것이 힘들다고 들었다. 태국에는 근육질의 우락부락하게 생긴 개들도 상당히 많다. 처음에는 무시하고 지나가려고 했는데 계속해서 쫓아온다. 속도를 줄이고 자전거에서 내리면 온순해진다는 얘기를 들은 적이 있어서 일단 자전거에서 내린 후 자전거를 방패 삼아 천천히 걸었다.
자기들의 생활 반경을 어느정도 벗어나니 사나웠던 녀석들이 사그라드는 것을 보았다. 이 작은 마을에서만 연속으로 두 번 개 쫓김을 당했다. 무서운 녀석들. 식당에 가서 밥을 먹으며 자전거 여행을 하며 개에게 쫓길 때 어떻게 해야하는지 인터넷으로 알아보았다. ‘자전거로 여행하는 사람들’카페에 막대기를 하나 들고 다니면 꽤나 효과적이라는 말이 있어, 식당 주인에게 혹시 막대기를 하나 얻을 수 있냐고 하니 1m 정도 되는 막대기를 하나 건네준다. 고맙다고 하고 자전거에 거치하니 주인 세명이 빵터져서 깔깔대며 웃는다. 나는 한껏 진지한데.
막대기가 있으니 심리적으로도 안정이 되었다. 위급 상황에서 무기로 사용할 수도 있고 개가 다가오지 못하게끔 거리 조절도 할 수 있으니까 이것 만큼 효과적인게 없겠다 싶은 느낌이 들었다. 그 후로도 아스팔트 길을 지나서 작은 마을처럼 보이는 곳에 들어간다 싶으면 막대기부터 꺼내들고 자전거를 탔다.



길에서 자전거 여행자를 만났다. 영국에서 출발해서 여기까지 왔다는데 비자문제 때문에 중국을 경유해서 돌아왔다고 한다. 아마 최소한 13,000키로는 탔을거다. 개 문제에 대해 고민을 토로하니 뭐 그냥 신경쓰지말고 지나가면 된다고 한다. 나는 언제쯤 이런 평정심을 가질 수 있을까?
오후 2시쯤 선교사님 집에 도착했다. 인사를 드리고 수박과 커피를 얻어 먹고, 개를 쫓을 때 쓸만한 삼단봉을 어디서 구매할 곳이 없냐고 여쭈어보니 근처 백화점있다고 해서 그 곳으로 향했다. 간단히 국수를 먹고 다이소 같은 곳에 들렀는데 삼단봉은 당연히 없다. 그 대신 쓸만한 것이 없을까 뒤져보니 청소코너에서 길이가 조절되는 밀대를 발견했다. 길이가 꽤나 길게 늘어나는데 줄이면 내 가방에 들어갈만한 크기다. 가격도 얼마하지 않아 얼른 하나 구매했다.



선교사님 집에 손님이 잘 만한 공간이 딱히 없어서 호텔을 예약해주셨다. 자전거 여행을 시작한 이래로 가장 좋은 숙소이다. 깐짜나부리에서 유명한 역사적인 장소인 콰이강의 다리를 구경하고는 근처에 정말 맛있는 고기, 해산물 뷔페가 있다고 그 곳으로 나를 데리고 가주신다. 각종 고기와 무엇보다 생새우를 실컷 먹었다. 배가 터질거 같은데도 근처 야시장으로 가서 좀 더 먹었다.
내일은 선교사님 내외가 일정이 있어서 만날 시간이 없다고 하신다. 호텔에 나를 내려다주시며 작별 인사를 나눴다.





깐짜나부리에서 유명한 곳은 다 갔다. 오늘 먹은 무-카타라는 음식은 내 태국여행에서 가장 좋아하는 음식이 되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