앵무새 부리(Parrot’s Beak)를 지나며: 여전히 남아있는 식민지의 유산

[동남아 자전거 여행] #38 베트남 2025.02.12 베트남과 캄보디아 사이의 이상한 국경을 달렸다. 껀터로 향하는 길, 길바닥에서 노숙

앵무새 부리(Parrot’s Beak)를 지나며: 여전히 남아있는 식민지의 유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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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5.02.12

일전에도 언급한 적이 있는데 루트를 짜는 방법은 크게 2가지가 있다. 구글맵으로 오토바이용 경로를 따라가는 경우와 Komoot앱으로 자전거용 경로를 짜는 경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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첫 번째는 태국, 라오스, 캄보디아에서 아주 유용했다. 태국은 갓길이 넓어 차도로 다녀 안전하고 무엇보다도 큰 길로 다니면 들개를 만날 일이 없다. 라오스와 캄보디아는 차량용 메인 도로를 제외하면 도로 포장율이나 도로 상태가 처참해서 이런 곳으로 다니려면 큰 용기가 필요하다. 그래서 구글맵이 추천하는 메인도로로 달리는게 상책이다.

Komoot으로 경로를 짜면 로컬들의 주거와 식생을 눈 앞에서 적나라하게 볼 수 있다. 뭣 모를 때 태국에서 이렇게 다녔는데, 논두렁으로도 들어가고, 그 곳에 사는 사람들만 다니는 깊은 골목 구석구석으로 들어갔었다. 로컬들의 주거와 식생을 자세히 관찰하고 싶은 진정한 탐험가인 경우 추천하는 앱. 태국에서는 개 때문에 며칠 후에는 바로 포기했었다. Komoot 경로는 선진국에서 유용하다. 뉴질랜드에서는 이만한 게 없었고 유럽에서도 유용하게 쓰일 것이다.

베트남은 태국과 다르게 위험한 들개가 많이 없다고 들었다. 게다가 라오스와 캄보디아와는 비교가 안 될 정도로 발전한 나라인지라 komoot이 여기서 통하는지 시험해보고 싶어서 오랜만에 이 앱을 이용해서 경로를 설정했다.

호치민으로 하루만에 바로 갈 수 있었지만 메콩강 하류 삼각주를 구경하고 싶어 껀터라는 도시로 향했다.(이틀거리). 어차피 베트남에서는 시간이 충분해서 이곳 저곳을 구경하고 다녀도 아무런 문제가 없다. 만약 시간이 빠듯해진다면 버스를 타고 이동을 해도 된다.

벼농사의 나라답게 넓은 평야에 넓은 논이 펼쳐져 있다. 이 때까지의 풍경과는 사뭇 다르다. 내가 있는 곳은 인도차이나반도 최남단 지역이라서 굉장히 덥고 습하다. 논 옆을 지날 때는 우리나라 여느 시골마을 여름 냄새가 난다. 추억.

지도를 보면 아는데 캄보디아와 베트남 국경에 있는 작은 길로 달렸다. 바로 오른쪽이 캄보디아인데 그냥 허허벌판이다. 어디서부터 캄보디아고 어디서부터 베트남인지 잘 구분이 안간다. 그냥 넓은 들판만 건너오면 불법으로 국경을 쉽게 건널 수 있을 것만 같았다. 지뢰가 심겨져있나?

국경 사이에 큰 산이나 강 같은 자연적 지형지물이 없을 때는 분쟁이 많이 일어날 것 같다. 역사적으로도 지금의 베트남의도시 호시민시를 두고 캄보디아와 베트남이 많이 티격태격 했다고 한다.

17세기 이전까지 호치민시는 캄보디아 크메르 제국의 영토. 하지만 그 이후 베트남의 남진정책으로 베트남으로 편입되었다. 그래서 캄보디아 사람들은 이 지역을 "잃어버린 우리 땅"이라고 기억하고 있고 이 지역에 대해 역사적인 피해의식과 앙금이 많이 남아있단다. 시엠립에서 봤던 여자애가 '캄보디아 사람들은 베트남을 싫어한다.'가 이 맥락에서 나온 얘기가 아니었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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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중에 알아보니 이 일대 국경선은 자연스럽게 생긴 것이 아니라, 프랑스 식민지 시절 그어진 행정 경계가 굳어진 결과라고 한다. 그래서 캄보디아 영토가 베트남 쪽으로 툭 튀어나온 ‘앵무새 부리(Parrot’s Beak)’ 같은 기묘한 형태가 남아 있단다.

아무튼 식민지 통치하던 나라들, 아프리카에 국경을 제멋대로 그어놓은 건 알았어도 캄보디아-베트남에까지 영향을 준지는 몰랐네.

이 튀어나온 지형은 호치민시(당시 사이공)에서 불과 50~60km밖에 떨어져 있지 않다. 그래서 베트남 전쟁 당시 북베트남군(베트콩)의 주요 은신처이자 보급로로 쓰였고, 이에 위협을 느낀 미군과 남베트남군이 1970년에 이곳을 대대적으로 공격하기도 했다고 한다.

출처: Wikimedia Commons, Map Cambodian Incursion May 70 from USMA.jpg (Source: United States Military Academy Department of History, Author: U.S. Army, Public Domain).

구글맵의 큰 길로 다닐 때는, 기억할 만한 이벤트가 하나도 일어나지 않을 때도 많다. 그저 평지에서 페달링한 기억뿐. 심지어 하루종일 100km 넘게 직진만 하는 경우도 허다하다. 하지만 오늘 같은 날은 골목골목 굽이굽이 들어가면서 새롭고 재미있는 풍경을 만나고 새로운 경험을 할 수 있다. 힘들긴 하지만 말이다.

예를 들어 오늘은 지나가는데 웬 아저씨들이 나를 불러세워서 과일을 준다. 처음엔 멀찍이 떨어져 앉았다가 나중엔 같은 테이블에 앉아서 먹었다. 나를 별로 의식하지도 않는 진정한 chill guy들이었다.

​오늘은 캠핑을 시도하고 싶었다. 며칠 전 만난 스페인 여행자의 영향 때문이다. 1년 반 동안 스페인에서 여기까지 온 그 여행자는 대부분의 날들을 캠핑을 하며 잤다고 한다. 어째서 저토록 용감한 것일까? 초창기 탐험가들은 대부분 유럽인들이었다. DNA가 남다른 것일까? 교육방식이 다른걸까? 제국주의도 이들의 이런 성향과 연관이 있었을까?

길에 꽤 큰 성당이 있기에 거기에 캠핑을 할 수 있을까싶어 들어가보니 아무리 찾아봐도 관리인이 보이지 않아서 패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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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기서 잘까 했는데 공동묘지라했다.

와일드 캠핑을 할 때 필요한 것은 식량과 충분한 물이다. 일단 오늘 저녁에 먹을 음식과, 4L 정도 되는 물을 사서 가방에 실었다. 노련한 자전거 캠퍼들은 금방 캠핑하기에 적절한 장소를 찾아낸다. 나는 적절한 장소를 찾기 위해 한참을 헤맸다.

논 옆에 정체불명의 공터가 하나 있었다. 도로 옆이긴 했지만 그래도 어느 정도 거리가 떨어져있고 숨을 수 있는 덤불 같은 것도 있었다. 일단 무작정 텐트를 치고, 가진 물로 몸을 씻는다. 개미가 드글드글했지만 텐트를 친다면 아무 문제가 없다.

정말로 습하고 더웠지만, 나는 놀랍게도 이런 환경에서도 잘 수 있는 능력을 가진 인간이었다. (더워서 잠들기 힘들 때 팁 하나. 몸에다가 물을 들이부어 입고 있는 옷을 적신다. 그러면 몇 시간은 시원하다.)

용기를 얻으려고 그 때 만난 스페인 여행자에게 메세지를 보냈다. 자기는 아무데나 텐트쳐도 여태껏 아무런 문제가 없었다고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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