6년 만의 방비엥, 다시 찾은 남싸이 전망대
[동남아 자전거 여행] #22 라오스 2025.01.10-11 2019년에 친구들과 함께 갔던 배낭여행자들의 천국, 방비엥 도착. 여기는 한국인들이 유난히 많다.
2025.01.10
오늘부터는 어떤 식으로 루트를 잡아도 한달 넘게 평지가 이어진다. 한 3일 정도는 울퉁 불퉁해서 완벽히 평지라고 하기는 좀 그렇지만 그 다음부터는 태국 남부와 같은 평지다. 뭔가 안심이 되면서도 아쉽다. 평지는 라이딩이 쉽지만 풍경이 좋지 못하고 무엇보다 지루하다.
어쨌든 오늘은 방비엥으로 진입한다. 오늘 달린 길은 특기할만한 오르막 구간은 없었지만 대기 상태가 그악하다. 라오스는 현재 중국에서 어마어마한 빚을 져서 도로와 철도를 건설했다. 누군가가 인터넷에서 ‘중공군들이 밀고 들어온다.’라는 말을 했는데 그 표현이 딱 맞다. 중국어 한자가 적힌 트럭들이 굉음을 내면서 모래폭풍을 일으키며 도로를 쌩쌩 달려대는데 그 느낌이 가히 파괴적이다. 루앙프라방을 출발한 첫날 부터 지금까지 목이 계속 아프고 다른 특별한 감기기운은 없는데 잘 때마다 기침을 심하게 하고있다. 오늘은 유달리 모래가 심해서 온 몸에 모래를 뒤집어 쓴 느낌이다.


오늘 기이한 경험을 했다. 내 앞에 가던 차에 있던 아저씨 두명이 급하게 내리더니 본넷 뚜껑을 여는게 아닌가. 그 안에 불이 붙었다.(?) 난생 처음보는 광경이다. 그러면서 불을 끄려고 노력하는 모습을 보았다. 어릴 때 GTA 게임을 할 때 이런 상황이 종종 있었는데 차에 불이나면 10초만에 차가 폭발한다. 그리고 그 앞, 뒤에 있던 차들도 연쇄적으로 폭발한다. 그래서 게임에서 내 캐릭터가 죽은 적이 많다.
순간 그 때 기억이 떠오르면서 무의식적인 생존본능으로 소리를 지르면서 재빨리 도망갔다. 안전지역으로 빠져나오면서 나는 내 자신이 무척이나 한심하고 초라하게 느껴졌다. 곤경에 빠진 사람을 무시하고 내 목숨 건지자고 허위단심 도망가는 내 자신이 한없이 비참하게 느껴지는 순간이었다. 인터넷에 검색을 해봐도 “엔진에 불이 들어온다.” “엔진 경고등이 들어온다.”의 정보 뿐 실제로 엔진에 불이 난 경우 어떻게 되는지에 관한 정보는 하나도 없었다. 우리나라에서는 이런 일이 일어나지 않기 때문이 아닐까. 다행히 폭발소리는 들리지 않았고 Chat GPT는 실제로 폭발이 일어날 가능성은 거의 없다고 했다.
허겁지겁 도망갈 때는 마치 10초만에 터지는 수류탄이 사람들 한복판에 떨어진 느낌이었다. 변명도 못하겠다. 나는 겁쟁이처럼 도망쳤다.




방비엥은 작은 시골마을인데 유난히 한국 관광객들이 많이 찾는다. 2014년 꽃보다 청춘 방영 이후로 한국인들이 많이 는 것 같은데 내가 방문했던 2019년엔 젊은 사람들이 많았다면 요즘은 50대 이상의 어르신들이 많이 보이는 거 같다. 그래서 방비엥 어디를 가든지 한국간판과 한국 메뉴판을 볼 수 있다. 아무래도 라오스 시골의 모습이 한국 어르신들의 향수를 자극하는 거 같다. 물가가 싸기도 하고.
도착해서 자전거를 실내에 보관할 수 있는 호스텔을 찾아 몇 군데 돌아다녔다. 다행히 운좋게 자전거 보관도 해주고 시설 좋고 합리적인 가격의 호스텔을 발견했다. 방비엥의 모든 라오스 사람들은 기본적인 한국말을 할 줄 아는게 참 신기하다.
자전거를 타고 마을을 둘러보며 6년전 친구들과 머물렀던 추억이 있던 장소를 많이 방문했다. 과거 사진과 대조해보니 여기도 많이 변했다.


왼쪽은 2019년 오른쪽은 오늘. 똑같은 위치. 옛날에 직원들을 찾아봤으나 모조리 바뀌었다.


다 떨어져가는 텐트 가방과 매트리스 가방 수선했다.
저녁에 한국 자전거 여행자 아저씨를 만나 라오스식 삼겹살을 먹었다. 전직 항해사 출신의 83년생 자전거 여행자. 2년 정도의 기간 동안 전세계를 자전거로 여행을 할 예정이라고 하신다. 미혼이고 어느정도 돈을 모아놔서 한국에서 살 정도는 아니더라도 동남아에서 은퇴를 할 정도는 된다고 한다.(부럽다.) 그래서 인도네시아에서 출발해서 천천히 자전거를 타고 올라오면서 어디 사는 것이 좋을지 보고 있다고 한다. 중국을 넘어 실크로드를 통해 유럽으로 그리고 캐나다, 미국까지 건너갈 생각이라고 하신다.
이 분은 키르키즈스탄, 타지키스탄 쪽에 있는 파미르 하이웨이를 꼭 가보고 싶다고 했다. 이 전까지 나는 파미르 하이웨이에 대해서 들어는 봤지 구체적으로 그 곳에 대해서 생각한 적은 없다. 이 얘기가 내 마음의 불씨에 불을 지필 줄은 이때는 몰랐다.
돌아와서 숙소에서 파미르 하이웨이에 대해서 조금 검색을 해보았다. 세계의 지붕이라 불리는 파미르 고원은 타지키스탄 두샨베에서 출발해 키르키즈스탄 오슈로 이어지는 약 1,200km의 루트. 해발 4500m 정도 되는 고원인 만큼 고산병의 위험이 있다. 7, 8월이 여름인데 여름에도 밤에는 영하로 떨어지고 기본 5일 정도의 식량을 챙겨 다녀야 하는 곳. 당연히 여름에도 눈이 내린다. 6월-9월을 제외하고는 사실상 자전거 여행이 불가능하다. 물을 몇십리터씩 들고다닐 수는 없기에 빙하가 녹은 물을 필터링해서 마셔야 하는 곳. 유라시아 자전거 여행의 끝판왕.
아무것도 없는 황량한 몽골을 생각 한 뒤에 눈 덮인 높은 산들과 울퉁불퉁한 지형을 추가해주면 그게 파미르 고원이다. 포장이 된 구간도 있지만 많은 구간이 자연의 길을 그냥 통과한다. 혼자 여행을 하기는 힘들어 많은 여행자들이 시작 지점이나 중간 지점에서 다른 여행자들과 합류를 해서 가게 되는데, 대부분의 여행자들이 유럽에서 건너오기에 서진을 하기보다는 동진을 하는 것을 추천한다고 한다.
아주 간혹 다니는 차와 자전거, 오토바이 여행자들을 제외하면 며칠 동안 사람 구경하지 못하는 건 다반사. 당연히 나는 애초에 이런 곳은 생각을 하지 않았음으로 여기를 가기 위해선 고려해야 할 것이 좀 있다.
- 타이어를 더 두껍고 튼튼한 것으로 바꾼다.
- 식량을 넣고 부피가 큰 월동장구를 보관하기 위해서는 더 큰 패니어 가방이 필요하다.
- 겨울용 신발과 옷을 구매해야한다.
- 침낭을 더 좋은 것으로 바꾸면 좋겠으나 돈이 너무 많이 들기에 침낭 라이너를 산다. 라이너만 사도 충분할 듯 하다. 이론상 15°C 온도를 올려준다고 한다.
- 매트리스를 하나 더 사야한다. 기존에 쓰는 써머레스트 지라이트솔 매트는 R값이 2.0이라 영하의 온도에서 자게되면 땅에서 올라오는 냉기를 막지 못한다. 그 위에 깔 자충매트나 에어매트를 사야한다.
- 자전거 구동계 업그레이드. 오프로드에 높은 경사를 올라가기 위해서는 더 가벼운 기어비가 필요하다.
여기에 당초 계획했던 터키 → 스페인루트가 아니라 스페인 → 터키루트로 방향을 뒤집어야 한다. 3월 중순에 스페인에서 출발을 해서 터키를 지나 중간에 기차를 타고 점프를 몇 번 한다면 8월 쯤에 파미르에 도착할 거 같다. 아마 여기까지 가게 된다면 9월이 되어서야 자전거 여행을 끝마칠 거 같은데 그 때면 내 통장에는 마이너스가 찍혀있으리라.
그런데도 내가 꼭 여기를 가고 싶은 이유는 이번 기회를 놓치면 죽기 전에 자전거를 타고 여기 못 올 거 같은 직감이 있기 때문이다. 이런 기회는 평생 살면서 한번 찾아올까 말까인데
- 돈이 있어야 하고
- 시간적 여유가 있어야하고
- 체력과 열정이 있어야하고
- 책임질 사람이 없어야한다.
이 네개 중에 하나라도 걸리면 이 여행은 못한다. 죽기 전에 이 네가지 요소를 만족하는 때가 다시 찾아올까? 아무리 생각해도 지금이 아니면 기회가 없다.
- 2026.03.17
2025.01.11

방비엥에서 하루 쉬어가기로 마음먹었다. 느지막히 일어나서 음식을 간단히 사먹고 미용실에 가서 귀를 팠다. 3,000원 정도를 내면 귀를 파주는데 귓밥이 상당히 많이 나왔다. 사진을 찍어놓긴 했는데 더러워서 여기 올릴 수는 없을 거 같다.
산책을 하며 마을 한바퀴를 돌았다. 마을이 워낙 작아 금방 끝이났다. 방비엥에서 유명한 관광코스는 남싸이 전망대라는 산과 블루라군 1,2,3이라는 수영을 할 수 있는 계곡 비슷한 곳이 있다. 남싸이 전망대가 가까워 별 생각 없이 그곳으로 자전거를 타고 갔다. 가면서도 남싸이 전망대를 오를거라는 생각을 하고 간 것이 아니고 입구에서도 오를거라는 생각을 하지 않았다. 그냥 친구 지웅이와 전화하고 있는 사이 내 몸이 이미 입구에 도착했고 자전거를 세워놓고 입구 티켓을 구입하고 올라가고 있었다. 언제나 내 여행은 행동이 결정에 앞선다.
6년전에 여기 왔을 때 살이 많이 찐 상태여서 무척이나 힘들었던 기억이 있다. 올라가면서 그 때 왜 힘들었는지 알거같았다. 짧은 코스이지만 경사가 심하고 친절한 길이 아니다. 하지만 지금은 무척이나 가뿐하게 올라갔다. 정상에는 사진스팟이 하나 있는데 사진을 찍기 위해서 30분이나 넘게 줄을 서서 기다렸다. 6년 전 사진과 비교해보면 오토바이도 약간 업그레이드 됐고 뒤에 보이는 길도 좋아진 걸 확인할 수 있다.
다시 숙소 근처로 돌아와 피자를 한판 먹고(여행 내내 먹고 싶었지만 오늘 처음 먹었다. 이유는 비싸서.) 호스텔에서 휴식.


왼쪽은 2019년 오른쪽은 오늘. 자세히 보면 도로도 포장됐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