페달은 못 뺐지만 비행기는 탔습니다
[뉴질랜드 자전거 여행] #01 2024.11.02-04 여행시작 뉴질랜드 자전거 여행 시작: 오클랜드에서 보낸 밤

11월 2일 토요일날 뉴질랜드로 출국하기 위해서, 그 전날 금요일에 자전거를 버스에 태워 서울로 올라간 후 형 집에서 하루 묵고 인천공항으로 출발했다. 말이 한 문장이지 지난한 과정이다. 자전거 무게까지 합하면 30kg가 넘는 짐을 버스에 싣는 것도 스트레스고 서울 고속버스터미널에서 나와서 형 집으로 가는 것도 고역이다.
어쨌든 다음날 오후 1시 비행기를 타기 위해서는 자전거 포장 시간까지 고려하면 오전 9시에는 공항에 도착해야 한다. 지하철을 타고 갈 생각으로 공항철도 자전거 탑승 예약까지 해놨는데 고맙게도 형이 차를 태워준다고 해서 형 내외(‘내’가 형이고 ‘외’가 형수님이다.) 함께 공항으로 갔다. 고맙습니다 형님 형수님.



나는 자전거 펑크도 혼자 한번 수리해보지 못한 초짜인데 자전거를 비행기에 실으려면 내 기준에서 꽤나 많은 기술이 필요했다. 최대한으로 포장 부피를 줄이기 위해서는(커지면 추가요금 받는다.) 바퀴, 핸들바 스템, 페달 분리를 해야 하는데 힘이 부족해서인지, 내 공구가 약해서인지 페달을 결국 분리하지 못하고 박스에 실었다. 안 그래도 프레임이 카본재질이라 내구성이 약한데 박스 부피가 커지면 그만큼 더 안에서 자전거 몸체가 흔들릴 수 있고 그러면 자연히 파손 확률도 그만큼 올라간다. 파손되면 내 자전거 여행은 끝이다. 인천공항 내 한진택배 직원 분께 뽁뽁이를 많이 사용해 달라고 간절히 부탁했다. 고맙습니다 직원님.
불행 중 다행으로 중국동방항공의 자전거 박스 포장 크기 규정은 삼면의 합 cm 기준이 아니라 최대 긴 면이 158cm를 넘지 않으면 무료로 자전거를 수하 할 수 있다고 해서 fragile 스티커를 잔뜩 붙인 후 위탁수하물을 맡겼다.
트립닷컴에서 예약할 때는 경유지에서 비행기를 바꿔 탈 때 자동으로 수하물이 다음 비행기로 인계된다고 들었는데 인천공항 직원이 항저우에서 짐을 찾은 후 다시 수하물을 맡기라고 한다. 스트레스 +1

비행기는 인천 → 항저우 → 시드니 → 오클랜드, 즉 2번 경유하고 26시간을 가야 한다. 이유는 당연히 돈. 인천에서 오클랜드로 가는 항공편이 편도 38만 원밖에 안 됐다. 경유 없이 직항으로 가는 메이저 항공사와 비교했을 때 1/3~1/4의 가격인데 시간 많은 나는 이 비행기를 안 탈 이유가 없다.
살면서 비행기를 타봤자 고작 동남아나 일본까지 가는 게 다였기에, 항공사의 장단점을 제대로 분간해 낼 수 없는 나는 중국비행기가 딱히 불편한 거 없고 마냥 좋더라.(기내식도 네 번 줬다. 좋았다.) 근데 같이 가는 다른 분들한테 듣기로는 중국항공사, 특히 중국을 경유하는 중국 항공사가 단점이 많다고 한다. 일단 99% 승무원이 영어를 못하고, 중국 내 공항에는 와이파이가 제대로 안 터지는 건 물론이고 터진다 한들 유튜브, 구글의 접속이 어렵다. 규정도 제멋대로이다.
나라고 물론 중국동방항공이 마냥 좋은 건 아니었다. 규정이 일관성이 없어선지 직원의 무지인지 항저우에서 짐을 다시 부치려고 하니 박스가 커서 2000위안(39만 원)을 추가로 내라더라. 한국에서 들은 규정(한 면이 158cm만 넘지 않으면 무료)을 얘기하니 한국직원이 잘못 알려준 거란다. 39만 원은 아니다 싶어서 자전거 규정이 따로 있지 않냐고 항의하니 대충 찾아보더니 1000위안(19~20만 원)으로 깎아줬다. 사실 내가 인터넷으로 중국동방항공 자전거 규정을 알아봤을 때도 1000위안 정도는 내야 된다고 생각하고 비행기를 탄 거라 그냥 결제했다.
웃긴 건 26시간 동안 만난 항공사 직원 중 유일하게 돈을 내라고 하는 이 사람만 영어를 할 줄 알았다. 아주 유창하더라.
우여곡절 끝에 오클랜드 도착. 확실히 여기 있는 모든 사람들 중 내 짐이 압도적으로 크다. 가로 폭이 넓으니 줄 서는 라인을 제대로 지나가지 못해서 애깨나 먹었다. 인터넷 후기를 보니 뉴질랜드는 청정구역이어서 입국심사가 까다롭다고 들었다. 심지어 출국하는 항공티켓이 없으면 입국을 거절당할 수도 있다고 한다. 그래서 12월 10일 날 방콕으로 가는 항공권도 끊었다. 큰 짐을 가진 난 잔뜩 긴장했는데 의외로 수월하게 끝이 났다.(텐트는 가져가더니 겉에 묻은 흙을 다 털고 자세히 살펴보고 다시 돌려주더라.)
이제 자전거를 다시 조립할 시간이다. 공항 밖으로 빠져나오니 저녁 8시가 넘었다 이때까지만 해도 9시까지 조립을 끝내고 자전거를 타고 에어비앤비 숙소까지 자전거로 15분, 늦어도 9시 반 전에 숙소에 도착할 수 있을 줄 알았다.
새로운 환경에서 새로운 경험을 하면 생각지도 못한 변수들이 쏟아지기 마련인데 내 경우에는 불행히도 시작부터 그랬다. 자전거 프레임은 다행히 부서지지 않고 멀쩡히 도착했는데 다른 문제가 몇 가지 생겼다.
첫째로는 스템을 제대로 조립할 줄 모르는 상태로 와서 엉망으로 조립했다는 점. (조립하고 나니 부품 2개가 남더라.)
둘째로는, 사람들이 자꾸 관심을 줘서 제대로 집중해서 빨리 할 수 없었다는 점(밤 시간이라 마음이 급했다.) 공항 보안관들은 brother라면서 다가와 자꾸 도와주려고 하고 어떤 아줌마는 한참을 끙끙대는 내 모습을 보더니 “Are you building your bicycle?”하면서 놀리고 지나간다. 그래도 보안관들이 대개 이민자들 같아 보였는데 여행을 진심으로 응원해 주더라.
셋째로는, 이게 가장 심각한데 뒷바퀴 바람을 넣던 중에 부품 하나가 실종됐다. 다음날 알고 보니 펌프에 부품이 끼여있었다. 그런지도 모르고 나는 바람 소리가 강하게 났으니 당연히 하늘로 날아간 줄 알고 근처를 한참 뒤졌다. 결국 부품을 찾지 못하고 뒷바퀴 바람을 못 넣었다. 바람을 못 넣는다는 건 자전거를 탈 수 없다는 말이다. 자전거를 탈 수 없다는 건 숙소로 못 간다는 말이다.


세 가지 선택지가 있었는데, 숙소까지 한 시간 넘게 자전거를 끌고 처음 와보는 이국땅에서 밤 11시 넘어서 걸어가든가, 커다란 택시를 타든가, 공항에서 노숙하든가. 일단 택시 요금이라도 알아볼 요량으로 택시기사들에게 가격을 물어보니 8~10만 원이란다. 차 타고 7분 거리를 흥정도 안 받아주고 10만 원을 받는 게 말이 되나 싶어서 그냥 씩씩하게 걸어가 버렸다. 도착하니 밤 12시 30분(한국시간 8시 30분). 시차 때문에 새벽 3시가 다 돼서 잠에 들었다.



걸어가서 도착!