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0년 차 벨기에 '괴물' 여행자를 만나다: 오지의 유혹

[동남아 자전거 여행] #12 태국 2024.12.25-26 핏사눌룩에서 다시 출발. 수코타이를 거쳐서 계속해서 북쪽으로 전진하자.

10년 차 벨기에 '괴물' 여행자를 만나다: 오지의 유혹

2024.12.25

아침에 일찍 일어나서 출발할 준비를 했다. 4일을 쉰 만큼 조금 멀리까지 달릴 생각이다. 태국은 우리나라처럼 조금만 가면 마을이 있고 도로 위에는 쉴 새 없이 노점상들이 있다는게 참 좋다. 사실 이건 여행자 입장에서 좋은거지 태국인들 입장에서 보면 시간당 벌이가 좋지 못하니 노동시간이 그만큼 길다는 뜻이기도 하다. 옛날에 동네 문방구는 아침부터 밤늦게까지 계속 주인 아주머니와 아저씨가 그 자리를 지키고 있었는데 태국의 노점상들도 그와 비슷하다. 늦은 새벽에도 그랩바이크를 타고 태국 곳곳에 음식을 배달해주고 사람을 오토바이 뒤에 태워서 목적지까지 태워주는 나라. 서구권의 선진국에서는 사실 상상하기 힘든 부분이다. 우리 같은 여행자들이 느끼는 동남아시아의 가성비와 편리함은 사실 많은 부분이 부의 불평등으로 부터 기인한다.

30분을 기다려도 Mark씨가 오지 않아 일본인 친구 마사에게 작별인사를 하고 호스텔을 빠져나왔다. 마침 입구에서 Mark씨를 만났는데 포옹을 해주었다. 포옹은 아직까지 언제나 민망하고 어색하다.

오랜만에 자전거를 타고 달리니 신난다. 생각해보면 자전거를 타거나, 하이킹이나 등산, 러닝, 캠핑 같은 활동을 할 때 이 활동을 즐긴다(enjoy)라거나 이 활동이 재밌다(fun)라는 표현을 살면서 쓴 적이 거의 없는 것 같다. 친구나 가족이 이런 활동을 하러 갈 때 늘 ‘조심해’라거나 ‘고생해라’라는 인사말을 했지, ‘Enjoy your cycling’이라든가 ‘Have fun’이라든가 하는 긍정적인 형태의 인사말을 나눈 적이 별로 없다. 그래서 내 자신도 이런 활동에 내심 재미를 느끼면서도 겉으로 대놓고 즐거움을 표현하는 방법을 잘 터득하지 못했다. 아니 이 말을 듣기 전까지는 내가 이 활동을 즐기는 것 조차 몰랐다.

하지만 여행하면서 만난 사람들은 내가 자전거로 시내 구경을 한다거나 하이킹을 하러 간다고 하면 항상 ‘Enjoy’나 ‘Have fun’이라는 인사말을 건넨다.(당연히 여행할 때는 ‘Safe travels”라는 말을 가장 많이 사용한다.) 영어를 잘 못하는 비영어권 서양인의 어휘력의 빈곤함 때문에 이런, 어쩌면 유아적이게 보이는 인사말을 건네는 것이 아니다. 영미권 사람들도 똑같이 말한다. 사소한 것 하나 하나에서 근본적으로 다른 동서양의 문화를 늘 느낀다.

맛난 음식을 먹고 열심히 페달질을 해서 숙소에 도착했다. 14,000원 정도 하는 숙소인데 숙소 가격이 이렇게 싸니 텐트가 있어도 텐트를 칠 필요성을 잘 못느낀다. 만약 숙소 가격이 뉴질랜드처럼 기본 10만원이 넘어간다면 어떻게 해서든 템플스테이, 스텔스캠핑을 시도해볼텐데 이 가격에 굳이 그럴 필요가 없다.

태국은 간단한 물건을 하나 줄 때도 꼭 바구니나 비닐봉지에 담아준다.

저녁을 먹으러 간다고 하니 숙소 직원 할아버지가 자기 오토바이를 타고 가라고 한다. 재밌겠다 싶어서 오토바이를 타고 근처 시장을 둘러보고 저녁을 먹고 들어왔다.


2024.12.26

태국의 남부지방은 대부분이 평탄한 지역이다. 반면에 북부로 올라갈수록 고도가 높아지고 산과 언덕이 많아진다. 그래서인지 인구도 남쪽에 더 많고 따라서 가축의 일종인 개도 남부로 갈 수록 많아진다. 뉴질랜드에서 하루 획득고도가 800m~1200m 사이였다면 이때까지 태국 남부지방 자전거 여행에서는 하루에 150m 남짓이었다. 그냥 거의 완전한 평지수준이다. 도로 노면 상태도 말끔하고 오토바이도 많고 길거리 상인들도 많아서인지 갓길도 아주 넓다.

반면에 태국 북부로 올라갈 수록 사정이 달라진다. 차량 통행량이 많이 줄어드는 탓에 남부만큼 넓은 갓길을 기대할 수 없고 오르막 내리막이 많고 넘어야할 산도 많은 산악지역이 시작된다. 오늘 내가 가는 길은 딱 태국 산악지역의 초입부. 인터넷으로 검색했을 때는 태국, 라오스 북부에 표범, 호랑이, 야생 코끼리, 곰이 산다고 하는데 사람들과 대화를 하면서 물어봤을 땐, 실제로 그 야생동물을 만날 일은 없다고 했다.(며칠 전 Mark 아저씨는 “호랑이 만나면 운 좋은거야.”라고 말했다.) 하긴 우리나라에도 지리산에도 곰이 산다.

오늘 아침에는 숙소에서 제공하는 공짜 커피를 한 잔 마시고 출발하면서 산지로 진입한다. 우리나라도 산악지역이라고 하면 산악지역인데 태국은 나에게 있어서 미지의 땅이다. 거기에 대부분의 한국인들이 그렇듯 살면서 자연과 가까이 지내지 못했다.

아웃도어 취미도 살면서 가져본 적이 없다. 이때까지의 태국은 과장을 조금 보태자면 마을을 벗어나도 300m 마다 식당과 가게들이 줄지어 있었다. 하지만 오늘부터는 얘기가 달라질 터. 산을 바로 앞에 두고 내가 느끼는 이 두려움의 감정은 무엇일까. 일종의 경외심이라고 한다면 우스울까.

이런 상황에서 늘 나를 괴롭히는 것은 나의 상상력이다. 만약 혼자 산에서 조난을 당한다면? 야생 코끼리를 마주한다면? 호랑이가 갑자기 나를 덮친다면? 내 스스로의 힘으로 아무것도 바꿀 수 없는 그런 상황에 직면한다면 과연 나는 무엇을할까? 기도를 할까?

오늘 본 광경 중 가장 내 인상에 깊게 남은 것은 자전거를 타는 할아버지. 그 할아버지는 우리나라 할아버지와 같은 자전거에 같은 속도로 자전거를 타는데 다섯 마리 넘는 개가 미친듯이 그 할아버지를 쫓아갔다. 하지만 그 할아버지는 콧방귀도 뀌지 않고 자기 갈 길을 가는 모습을 보았다. 나도 저렇게 태연해질 날이 있겠지?

열심히 산을 넘고 있는데 산 중턱에서 어떤 아줌마가 “사와디카”라고 크게 외치며 나를 환영해준다. 간단한 음식을 파는 곳인데 나에게 마사지를 받고 가라고 한다. 마사지는 비싸서 패스하고 음료수만 하나 마셨다. 300바트~700바트 정도 하니, 하루에 딱 한 사람만 걸려라는 심보인 듯 하다. 17년간 마사지사로 치앙마이에서 일하다가 노부모를 모시기 위해 고향으로 내려왔다고 했다.

목표한 지점에 거의 다 와가는데 자전거 여행자 한명이 보인다. 말을 붙이고 얘기를 좀 했는데 벨기에 사람이고 역시나 괴물같은 여행자이다. 연속적으로 한 것은 아니지만 10년을 넘게 자전거로 전 세계를 누빈 사람이다. 오늘 같은 숙소에 머무른다. 이 분은 워낙 오지로 자전거 타는걸 좋아하는 사람이라 오프로드로 가는 걸 선호한다고 한다. 얼마 전에는 깊은 산으로 들어가려다가 위험한 야생동물이 있다며 출입 제한을 받은 적도 있다고.

이건 이 사람의 웹사이트(클릭)